극한직업청소년(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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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안과 밖에서
대한민국의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다. 내가 학교에 다니면서, 그리고 교복을 입으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억에서 꺼내보았다.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다. 처음 교복을 입게 된,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하복 셔츠 안에 흰색이 아닌 티셔츠를 입지 않았고, 그 셔츠가 밖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그리고 틴트를 주머니에 꽂고 다녔기 때문에, 교복 재킷을 입지 않고 겉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주제넘은 말들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뿐일까? 나는 청소년이었고, 또 여성이었다.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선생들에게 ‘여학생들 다리를 오므리고 앉게 하라’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학생들 화장을 잡겠다고 교문을 통과하던 나를 붙잡고 한 남학생이 휴대폰으로 내 얼굴을 쓸어내렸다. 나는 그 수치..
2017.05.22 -
권력
교복 입을 생각에 너무나 설레었던 3월, 난 지옥에 입학하였다. 교복 치마로 어느 정도 다리를 벌릴 수 있을까는 궁금증에 서로 다리를 찢어보았다. ‘전시’를 위한 교복은 당연하게도 두세 발자국 정도 벌릴 수 있었다. 난 치마가 너무나도 싫었지만, 매번 등교할 때 치마를 입고 교실로 와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뒤 하교할 때 다시 치마를 입어야 하는 게 더 싫어서 꾹 참고 치마만을 입고 다녔다. 초등학생 때 어떤 친구가 원피스를 입고 왔는데 내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쟤 옷은 숙녀인데 사람은 숙녀답지 못하네"라며, 무슨 말이냐면 앉을 때 치마를 안쪽으로 넣고 앉아야 정돈되는데 그 친구는 정돈하지 않은 채로 앉았기 때문이다. 난 이 말을 교복 입었을 때 들었다. 내가 치마를 정돈하고 앉지 않아서 팬티가 보여 ..
2017.05.15 -
작은 전쟁들
나는 '여중'에 다니는 청소년이자 페미니스트이다. 삶을 옭아매는 차별발언들과 열심히 싸우고자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학교에 난무하는 온갖 혐오발언과 억압에 지쳐 십 분도 채 안 되는 하굣길을 좀비 마냥 비척비척 걸어와 이불 위에 드러눕고는 한다. 속에서만 지르던 비명을 휴대폰을 받고서야 겨우 SNS에 쏟아내고, 좋아하는 가수의 영상을 실없이 웃으며 몇 번이나 돌려보고,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잠에 든다. 6시 반을 알리는 알람을 듣고 깨어나면 열심히 충전한 에너지를 도로 소진하러 갈 준비를 한다. 1. 조신해야 하는 일상 복장검사를 하지 않는 날 교문에는 늘 체육교사 두 명이 서 있다. 우르르 쏟아지는 학생들 위에 겹겹이 쌓이는 "예쁜 미소로 하루를 시작해야지." 따위의 목소리는 나를 웃을 수 없게 만..
2017.05.03 -
세뱃돈을 둘러싼 사정들 - 청소년의 경제적 권리를 찾아서
내가 저항하자 엄마는 말했다. “그 돈이 니 돈인 줄 알아?” 설이다. 설이면 한 해 동안 집이 얼마나 가난해졌는지 알 수 있다. 이른바 세뱃돈지수라고나 할까. 세뱃돈 받기가 얼마나 어렵거나 눈치가 보이는지, 엄마 아빠가 시골에 가면서 봉투에 넣을 액수를 가지고 얼마나 옥신각신 다투는지, 최종적으로 나에게 쥐어진 세뱃돈의 액수는 얼마인지! 이런 지표들을 바탕으로 작년과 비교 통계하면 얼추 알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나빠졌구나. 내년에는 얼마나 더 나빠질까?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세뱃돈 세기에만 바쁠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날부터 다 알아버리고 만다. 할머니가 주는 세뱃돈은 우리 엄마아빠가 준 용돈에서 떼어 주는 거라는 걸. 우리 아빠는 삼촌이 나와 동생들에게 세뱃돈을 줄 것을 염두에..
2017.02.10 -
나에게 아빠라는 존재
한 남자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차 안에서 나오는 라디오는 "한 차량이 고속도로를 역주행하고 있으니 조심하시길 바란다."고 알리고 있었다. 그것을 듣고 그가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한 대는 무슨, 수백 대는 되겠구만.."이었다. 차를 운전하고 있는 남자는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거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아빠'를 무서운, 권위적인, 무조건 따라야 하는 존재로 여겼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를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행동했었다. 반항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고, 그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아빠'의 기침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항상 눈치를 봐야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걸 ..
2016.11.30 -
패륜아로 산다는 것
우리 아버지는, ‘평소에는’ 참 자상한 분이었다. 자식들의 학교 공부를 도와주고, 여름에는 자식들이 좋아하는 과일로 화채를 만들어주는 것을 좋아하고, 당신께서 기분이 좋으신 날에는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즐겁게 요리하던 자상한 분이었다. 평소에는 그랬다. 그리고 동시에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분이었다. 아버지의 분노조절장애는 내 유년시절을 불행하게 했다. 스포츠 경기 시청과 게임에 중독됐던 아버지가 응원하는 경기의 실적이 좋지 않은 날에는 가족들이 아버지의 눈치를 봐야만 했고, 갈수록 어려워지던 경제상황은 부모님의 불화를 야기했다. 내가 처음으로 시외에 나가 봉사활동을 하고 온 날, 나는 아버지에게 밟혀야 했다.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은 위험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것을..
2016.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