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22. 12:51ㆍ극한직업청소년
대한민국의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다. 내가 학교에 다니면서, 그리고 교복을 입으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억에서 꺼내보았다.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다. 처음 교복을 입게 된,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하복 셔츠 안에 흰색이 아닌 티셔츠를 입지 않았고, 그 셔츠가 밖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그리고 틴트를 주머니에 꽂고 다녔기 때문에, 교복 재킷을 입지 않고 겉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주제넘은 말들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뿐일까? 나는 청소년이었고, 또 여성이었다.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선생들에게 ‘여학생들 다리를 오므리고 앉게 하라’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학생들 화장을 잡겠다고 교문을 통과하던 나를 붙잡고 한 남학생이 휴대폰으로 내 얼굴을 쓸어내렸다. 나는 그 수치심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또 고등학생인 현재는 어떤가? 여러 혐오가 뒤섞인 지문들 속에 잠겨 살아야 하는 고등학생도 별다를 바 없다. 아니 어쩌면 더 심할 것이다. 한때는 교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위협을 느낄 때도 있었다. 남자친구에게 선물을 받은 선생과 학생들은 이를 얘기했다가 남학생들에게 ‘김치’소리를 듣기 일쑤다.
이 원고를 쓰면서, 내가 겪었던, 어떤 일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어느 날이었다. 보통날보다 한 시간정도 일찍 등교하던 날이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역 근처 정류장에서 환승을 하려던 찰나에 다른 버스도 도착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내렸다.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그저 버스를 갈아타려고 했을 뿐이었으니까. 허나 세상은 달랐다. 한 남성이 내게 다가오면서 연신 “학생, 예쁘다, 예쁘다”라고 말했다. 순간적으로 발이 굳었다.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 말고는 어떤 생각도, 기분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은 속도를 내어 무시하고 사람들이 뭉쳐 있는 곳으로 갔고, 곧바로 버스에 올라탔다. 하교 후 양친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돌아오는 답은 정말 순간적으로 느꼈던 그 두려움과 맞먹는 위협이 되었다. ‘왜 신고하지 않았느냐, 네 치마가 너무 짧았던 것은 아니냐’ 등 더 회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말을 들어야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어떤 말도 꺼내기 싫었다. 아니다, 할 수 없었다. 말문이 막힌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가끔은, 내 나이를 밝히기 두려워질 때가 있다. 어쩌면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외모로 나이를 판단하고, 그에 대해 아니라고 말했을 때 바뀌는 태도들은 나를 역겹게 만든다. 또, 자칭 ‘어른’들은 줄곧 내가 쌓아온 지식을, 겉멋, 혹은 ‘아는 척’으로 바꿔버리곤 한다. 온라인상에서는 더더욱 꺼려진다. 내 나이가 나를 판단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화나는 일이다.
나로 살아가는 일이 어려울 줄이야.
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