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여성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

2017. 5. 24. 20:39극한직업청소년


 나는 여성이고 청소년이자 페미니스트이다. 필자가 바라고 하고자 하는 일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되는 일이다. 학교에서 자유롭게 나를 표출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일이다. 어딘가에서 본 구절처럼, 인권은 돈이 아니라서 서로를 배려하면 더 많이 가질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좀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의 가스라이팅은 필자가 페미니스트이길 포기하고 순응하기를 바라는 그들의 간절한 염원이다. 체육교사는 분명히 학우들의 축구 시합을 약속했지만 여자가 무슨 축구를 하냐.”라며 경기를 하고 있는 남학우들을 구경하게 했다. 중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는 양성평등이라는 단어로 마치 젠더가 두 개뿐인 것처럼 교육하고,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은 남성은 성적 욕구를 자제할 수 없다.”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여성혐오적인 커뮤니티를 출처로 하여 권장하고 있다. 학교에서 담요를 두르고 다니는 것은 치마를 짧게 줄인 탓에 추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학교는 짧게 줄인 치마를 입고 다니면서 두르는 담요,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공고문을 곳곳에 붙여 놓는다. 설령 교복을 줄여서 춥다고 해도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친구는 입술에 화장품을 발랐다는 이유로 교사의 눈에 띄기라도 할까 전전긍긍한다. 도대체 여성 청소년에게 들이대어지는 학생다움의 일부 잣대는 왜 남성 청소년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가?


 불과 이번 주 월요일, 필자는 부친에게서 폭행을 당했다. 조모와 부친에게 대들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과연 내가 열다섯 난 딸이 아니라 스물대여섯 먹은 비청소년 남성이었어도 나를 바닥에 때려눕히고 걷어차고 머리를 수차례 후려쳤을까? 이러한 점에서 나는 회의감을 느낀다. 내가 부친을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이 도착하자 그가 한 말은 아무 일도 아니라며, 그저 딸이 부친에게 대든 것뿐이라며 가셔도 된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여성으로만 살아도 생명의 위협과 범죄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물며 여성 청소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성범죄 피해 사실이 알려지면 그러게 왜 치마를 그렇게 입고 다니냐’, ‘저렴해 보이게 왜 화장을 했냐2차 가해를 당해야 한다. 그것은 달리 기성세대에게서만 오는 압박이 아닌, 주변의 친구들에게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또래들이 즐겨 하는 SNS인 페이스북을 필자는 거의 유일하게 하지 않는다. 여성혐오는 그들이 말하는 속칭 상남자에도, 애인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반대하고 행동을 제한하고 드는 자상한 남자친구에도, 그들이 즐겨 하는 게이냐?”, “레즈냐?” 등의 언행에도 녹아들어 있다. 그 점을 지적하면 금세 프로불편러’, ‘예민한 애’, ‘메갈로 낙인찍힐 게 두려워 튀어나오려는 말을 눌러 삼킨다. 그런 후에는 다시 그들과 가까이 지내기에 본인도 주변인들도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꾸미지 않아도, 성격이 괄괄해도, 당신은 여성답다. 당신이 학교를 다니든 다니지 않든, 공부를 열심히 했든 그러지 않았든 당신은 청소년답다. 비록 대한민국에서 여성 청소년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힘들지라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 당신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 학교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주변 친구들로부터, 범죄로부터 오는 괴로움과 고통을 당신이 겪고 있다면, 그것 또한 당신 혼자가 아니니까 목소리를 내어도 된다고 나 자신에게, 우리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당당하게 여성 청소년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생겼으면 한다.


- 김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