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는 권리다

2017. 7. 15. 20:56극한직업청소년

소비는 권리다



 얼마 전 방과 후에 소원해진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경제 형편이 좋지 않은 친구였는데 생활비로 쓸 지원금을 받기 위해 서류를 작성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있었다고 했다. 그 서류의 양식은 이름, 소속된 지역과 학교 등의 기본적인 정보부터 가족에게 쓰는 편지 같은 개인적인 정보까지 기입하도록 되어 있었다. 남은 공란은 가족에게 편지를 쓰는 부분밖에 없었다. 선발되어 지원금을 받도록 하기 위해 더 신경 써서 작성할 것을 요구하는 선생님과 본인의 가정 형편에 대해 구걸하듯 쓴 글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친구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당혹감과 황당함과 원인 모를 분노가 나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매달 오만 원씩 꼬박꼬박 용돈을 받아 왔고 조금만 절약하면 아무런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던 내가 이 글을 투고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그 원인 모를 분노에 있다. 


 최저임금 6000원 시대에서 청소년의 경제적인 자립은 거의 불가능하다.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만 15세 미만의 청소년은 꿈도 꾸지 못하는 이야기다. 매 끼니를 챙기는 것, 기본적인 의식주부터 시작해서 심지어는 생리대 등의 여성용품을 구매하는 것 등이 일부 혜택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억압이자 고통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한참 자신을 가꾸기에 여념이 없는 또래 청소년 사이에서 생필품을 구매하지 못해 고민해야만 하는 그 감정은 무관심한 사회가 행하는 폭력이자 학대이다. 


 또한, 청소년은 비청소년이 당연하게 누리는 문화생활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다. 나를 비롯한 주변 친구들은 시내로 놀러 가면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노래방에 가거나 카페에 간다. 하지만 놀기 위해 소비하는 돈이 재밌게 놀아도 풀리지 않는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밥을 먹고 필요한 화장품을 구입하면 벌써 가진 돈의 절반 정도를 소비한 셈이다.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든다는 것은 주어진 자유시간이 점차 없어지는 것과도 같다. 


 자립해서 돈을 벌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청소년에게 만 원은 너무 큰 단위이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을 굉장히 즐기는데, 책 한 권을 구매하는 것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근처 도서관에서 대여해 읽는 것과 만 원 상당의 신권을 손에 쥐는 그 쾌감은 가히 비교할 수조차 없다.


 사치는 비청소년들에게도 스트레스 해소의 방법 중 하나이며 답답한 일상의 탈출구이다. 청소년도 그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 쓸 수 있는 돈이 적은 금액의 용돈이거나 아예 없는 청소년은 사치를 그저 먼 것으로밖에 인식할 수 없다. 왜냐하면 비청소년들은 경제적으로 빈곤한 청소년들의 사치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소비는 권리이다. 그것이 조금 초과된다고 생각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 이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