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27. 19:07ㆍ극한직업청소년
나이는 누군가의 경제활동을 침해할 명분이 되지 않는다.
나는 최근 은행에서 체크카드를 발급받았다. 내가 체크카드를 발급받은 은행에서 청소년이 체크카드를 발급할 수 있는 나이는 만 14세 이상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 말은, 청소년일지라도 만 14세 이상이라는 조건에 충족하고, 필요하다고 명시된 문서를 가지고 은행을 방문한다면 체크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몇 년이 지난 올해가 되어서야 발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리 사회 곳곳의 청소년은 경제적인 제약을 받고 있다. 그건 단지 쓸 수 있는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시행된 국가인권위원회법 2조 3항에 의하면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출생지, 등록기준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기혼·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한 고용, 재화나 시설의 이용, 교육의 우대와 성희롱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청소년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나이에 따른 재화나 시설의 이용에 관한 차별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에게 경제적인 차별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여러 은행의 경우 만 14세 이상의 청소년에게 통장 개설 이후 체크카드를 발급하여 쓸 수 있게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소년의 경우 은행의 이용이 어렵다. 그 이유는 ‘시간’에 있다. 대부분의 은행의 영업시간은 4시까지이다. 하지만 학생이 대부분인 청소년의 경우, 4시에 은행을 이용할 수 없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 4시 전후이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난 후 은행으로 있는 힘껏 달려가도 은행이 닫혀있기 일쑤에다 한 은행은 마감 시간이 임박했다는 이유로 청소년에게 퇴짜를 놓은 경우도 있었다. 또한 학생들이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인 주말과 공휴일에는 은행을 운영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학생들은 은행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통장을 발급하고 체크카드를 발급받는 것뿐만 아니라 은행에서의 경제 활동 자체에 제약을 받는 것이다.
만 14세 이상인 청소년이 증빙 서류들을 가지고 4시 이전에 은행에 방문할지라도 모든 은행에서 체크카드를 발급해주는 것은 아니다. 국민은행은 조건에 충족한다면 청소년 혼자 은행에 방문해도 체크카드를 발급해주는데 비해, 하나은행의 경우 만 19세 미만인 경우 부모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체크카드를 발급해주지 않는다. 나의 경우, 부모님께서 시간을 비워주셔서 체크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또한 통장과 체크카드를 발급받을 때 필요한 증빙 서류에는 주민등록등본이 있는데, 이는 만 15세 미만의 청소년은 스스로 발급할 수 없다. 또한 통장을 발급할 경우는 개설할 목적을 뚜렷하게 나타내는 증빙 서류가 필요한데 이는 청소년 스스로 준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서류가 없다면 통장에서는 소액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모든 청소년이 이렇게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은행을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부모님과의 사이가 좋지 않을 수도 있고, 부모님께서 청소년의 경제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혹은 별로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부분에서 청소년은 경제활동을 할 권리마저 박탈당할 수 있다.
나이는 누군가의 경제 활동을 침해할 명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글에 모두 담을 수도 없는 경제적인 차별은 청소년을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는 범위로 몰아가고 있다. 법으로 보장받아야 할 나이에 따른 차별 철폐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청소년의 경제활동은 제한되고 있다. 우리는 바뀔 것을 요구해야 한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경제 활동의 범위 내에 있지 못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바뀔 것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우리의 경험을, 우리의 이야기를 더 크게 외쳐야 한다. 바뀌어야 한다고.
- 류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