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청소년(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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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경제적 권리는 볼모다
청소년의 경제적 권리는 볼모다 최근 친구를 통해 ‘청소년 빈곤‘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청소년 빈곤은 나도 겪어왔던 것이지만 정의된 단어로 접하니 약간은 생소하기도 하고 내가 엄마로 인해 겪었던 일이 당연한 것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다. 엄마는 항상 나를 혼낼 때 통장을 뺏곤 했다. 혼날 땐 내게서 뺏은 통장의 내역을 보고 내가 이체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무얼 샀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불어야만 했다. 엄마는 내역 중에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내역이 있다면 항상 화를 내곤 했다. 통장을 뺏고 자기 분을 못 이겨 통장을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 적도 있다. (이 때문에 아직도 통장이 없다.) 체크카드를 만든 후론 체크카드도 뺏겼다. 뺏고 금방 돌려주긴 했지만, 그 행동과 함께 날아오는 날 향한 비..
2017.07.30 -
나이는 누군가의 경제활동을 침해할 명분이 되지 않는다.
나이는 누군가의 경제활동을 침해할 명분이 되지 않는다. 나는 최근 은행에서 체크카드를 발급받았다. 내가 체크카드를 발급받은 은행에서 청소년이 체크카드를 발급할 수 있는 나이는 만 14세 이상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 말은, 청소년일지라도 만 14세 이상이라는 조건에 충족하고, 필요하다고 명시된 문서를 가지고 은행을 방문한다면 체크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몇 년이 지난 올해가 되어서야 발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리 사회 곳곳의 청소년은 경제적인 제약을 받고 있다. 그건 단지 쓸 수 있는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시행된 국가인권위원회법 2조 3항에 의하면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란 합리적인 이유..
2017.07.27 -
소비는 권리다
소비는 권리다 얼마 전 방과 후에 소원해진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경제 형편이 좋지 않은 친구였는데 생활비로 쓸 지원금을 받기 위해 서류를 작성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있었다고 했다. 그 서류의 양식은 이름, 소속된 지역과 학교 등의 기본적인 정보부터 가족에게 쓰는 편지 같은 개인적인 정보까지 기입하도록 되어 있었다. 남은 공란은 가족에게 편지를 쓰는 부분밖에 없었다. 선발되어 지원금을 받도록 하기 위해 더 신경 써서 작성할 것을 요구하는 선생님과 본인의 가정 형편에 대해 구걸하듯 쓴 글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친구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당혹감과 황당함과 원인 모를 분노가 나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매달 오만 원씩 꼬박꼬박 용돈을 받아 왔고 조금만..
2017.07.15 -
부모 허락이 없어도 돈을 벌고 싶다
부모 허락이 없어도 돈을 벌고 싶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나 타 지역으로 올라왔다. 시작은 좋았다. 성적을 좋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고, 특성화 고등학교이니 잘하면 창업을 해서 돈도 벌 수 있을 줄 알았다. 백만장자의 꿈을 안고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내 꿈은 헛된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중학생 때보다 돈 쓸 일이 잦아졌다. 선후배 간 친목을 위한 마니또도 있고, 외모에 관심이 생기다 보니 화장품도 사야 하고, 우리 학교는 교복을 입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사복도 몇 벌 구매해야 하고, 급식이 맛없는 날에는 편의점에 가서 라면도 사 먹어야 하는 일들 말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것이 꼭 필요한 지출은 아니다. 내키지 않으면 돈을 아끼기 위해 꾹 참고 급식을 먹을 ..
2017.07.12 -
대한민국에서 여성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
나는 여성이고 청소년이자 페미니스트이다. 필자가 바라고 하고자 하는 일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되는 일이다. 학교에서 자유롭게 나를 표출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일이다. 어딘가에서 본 구절처럼, 인권은 돈이 아니라서 서로를 배려하면 더 많이 가질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좀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의 가스라이팅은 필자가 페미니스트이길 포기하고 순응하기를 바라는 그들의 간절한 염원이다. 체육교사는 분명히 학우들의 축구 시합을 약속했지만 “여자가 무슨 축구를 하냐.”라며 경기를 하고 있는 남학우들을 구경하게 했다. 중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는 ‘양성평등’이라는 단어로 마치 젠더가 두 개뿐인 것처럼 교육하고,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은 “남성은..
2017.05.24 -
원인 모를 불편함의 가시화
한 번 눈치 채고 나면, 그것을 알기 전으로 절대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이다. 익숙하게, 숱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들어온 여성혐오 발언이 날카로운 가시의 형태가 되어 고막에 거슬리게 박혀올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5.17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다수 중 하나이다. 페미니즘의 뜻을 찾아보고, 여성혐오 발언의 종류를 알아보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겠다는 포부를 다지며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를 읽게 되기까지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나 무지했던지 앞에서 말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를 읽을 때는 손가락에 걸리는 각각의 페이지가 내게 큰 충격을 안겨주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고등학생은 아침 8시 20분부터 밤 9시 반까지..
2017.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