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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청소년

대한민국에서 여성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  나는 여성이고 청소년이자 페미니스트이다. 필자가 바라고 하고자 하는 일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되는 일이다. 학교에서 자유롭게 나를 표출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일이다. 어딘가에서 본 구절처럼, 인권은 돈이 아니라서 서로를 배려하면 더 많이 가질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좀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의 가스라이팅은 필자가 페미니스트이길 포기하고 순응하기를 바라는 그.. 더보기
원인 모를 불편함의 가시화    한 번 눈치 채고 나면, 그것을 알기 전으로 절대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이다. 익숙하게, 숱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들어온 여성혐오 발언이 날카로운 가시의 형태가 되어 고막에 거슬리게 박혀올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5.17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다수 중 하나이다. 페미니즘의 뜻을 찾아보고, 여성혐오 발언의 종류를 알아보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겠다.. 더보기
학교의 안과 밖에서 대한민국의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다. 내가 학교에 다니면서, 그리고 교복을 입으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억에서 꺼내보았다.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다. 처음 교복을 입게 된,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하복 셔츠 안에 흰색이 아닌 티셔츠를 입지 않았고, 그 셔츠가 밖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그리고 틴트를 주머니에 꽂고 다녔기 때문에, 교복 재킷을 입지 않고 겉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주제넘은 말들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뿐일까? 나는.. 더보기
권력  교복 입을 생각에 너무나 설레었던 3월, 난 지옥에 입학하였다. 교복 치마로 어느 정도 다리를 벌릴 수 있을까는 궁금증에 서로 다리를 찢어보았다. ‘전시’를 위한 교복은 당연하게도 두세 발자국 정도 벌릴 수 있었다. 난 치마가 너무나도 싫었지만, 매번 등교할 때 치마를 입고 교실로 와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뒤 하교할 때 다시 치마를 입어야 하는 게 더 싫어서 꾹 참고 치마만을 입고 다녔다. 초등학생 때 어떤 친구가 원피스를 입고 왔는데 내 .. 더보기
작은 전쟁들  나는 '여중'에 다니는 청소년이자 페미니스트이다. 삶을 옭아매는 차별발언들과 열심히 싸우고자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학교에 난무하는 온갖 혐오발언과 억압에 지쳐 십 분도 채 안 되는 하굣길을 좀비 마냥 비척비척 걸어와 이불 위에 드러눕고는 한다. 속에서만 지르던 비명을 휴대폰을 받고서야 겨우 SNS에 쏟아내고, 좋아하는 가수의 영상을 실없이 웃으며 몇 번이나 돌려보고,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 더보기
세뱃돈을 둘러싼 사정들 - 청소년의 경제적 권리를 찾아서 내가 저항하자 엄마는 말했다. “그 돈이 니 돈인 줄 알아?”설이다. 설이면 한 해 동안 집이 얼마나 가난해졌는지 알 수 있다. 이른바 세뱃돈지수라고나 할까. 세뱃돈 받기가 얼마나 어렵거나 눈치가 보이는지, 엄마 아빠가 시골에 가면서 봉투에 넣을 액수를 가지고 얼마나 옥신각신 다투는지, 최종적으로 나에게 쥐어진 세뱃돈의 액수는 얼마인지! 이런 지표들을 바탕으로 작년과 비교 통계하면 얼추 알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나빠졌구나. 내년에는 얼.. 더보기
나에게 아빠라는 존재 한 남자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차 안에서 나오는 라디오는 "한 차량이 고속도로를 역주행하고 있으니 조심하시길 바란다."고 알리고 있었다. 그것을 듣고 그가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한 대는 무슨, 수백 대는 되겠구만.."이었다. 차를 운전하고 있는 남자는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거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아빠'를 무서운, 권위적인, 무조건 따라야 하는 존재로 여겼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를 무조건적으로 따.. 더보기
패륜아로 산다는 것 우리 아버지는, ‘평소에는’ 참 자상한 분이었다. 자식들의 학교 공부를 도와주고, 여름에는 자식들이 좋아하는 과일로 화채를 만들어주는 것을 좋아하고, 당신께서 기분이 좋으신 날에는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즐겁게 요리하던 자상한 분이었다. 평소에는 그랬다. 그리고 동시에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분이었다. 아버지의 분노조절장애는 내 유년시절을 불행하게 했다. 스포츠 경기 시청과 게임에 중독됐던 아버지가 응원하는 경기의 실적이 좋지 않은 날에는 가족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