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청소년(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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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으로부터의 소외
당연한 것으로부터의 소외 청소년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눈앞에서 ‘안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대상이 물질이든, 행위이든, 표현이든 간에 관계없이 말이다. 나 또한 청소년이라는 꽉 막힌 투명 지붕 아래에 살며 빼앗기고 경고 받고 위협받은 적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데, 그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 나는 당시 18살, 집에서는 고함과 욕설을 들었고 학교에서는 교사들의 인서울 입시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의 정신 상태는 당연하게도 건강하지 않았다. 밤에는 기숙사 침대에 누워 아무도 모르게 훌쩍이고 낮에는 끔찍한 두통에 신음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수업시간에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와서 급히 화장실로 뛰어간 적도 있었고, 나날이 배가 되는 생리통에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길바닥에..
2018.04.09 -
금지와 해방은 한 쌍이다
금지와 해방은 한 쌍이다 올해로 스무 살이 되었다. 이제 어느 편의점을 가든 담배를 살 때 눈치 볼 필요가 없어졌다. 스무 살이 되기 하루 전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이제 스무 살이니 술, 담배 다 할 수 있겠다며 좋냐고 물었다. 난 이미 다 하고 있었는데 뭐가 좋겠냐고 되물었다. 사람들은 내 등을 툭 치며 “그래도 이제 합법적이잖아”라고 했다. 나는 청소년기가 끝날 무렵 탈가정을 했다. 그러면서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신분증을 빌려서 클럽도 가고 애인과 섹스도 했다. 나는 나에게 금기시되는 모든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들었다. 꼰대같은 비청소년들이 흔히 걱정하는, ‘아무런 규제 없고 중구난방인’ 생활을 누렸다는 뜻이다. 이제 나는 스무 살이고, 전부터 내가 즐기고 있었던 모든 것을 제약 없이, 눈..
2018.04.06 -
아랫사람이라는 각인
아랫사람이라는 각인 중학교에 입학하니 당황스러웠다. 명찰 색깔로 학년을 눈에 보이게 나눈다고 하길래 처음엔 그냥 신기한 방식 정도로 느꼈는데, 위 학년이면 아래 학년이 먼저 고개와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하라고 했던 것이다. 위 학년에게는 꼬박꼬박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존댓말을 하라고도 했다. 학생회 간부가 공식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해서 더 당황스러웠다. 다른 초등학교에선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선 그런 식의 요구를 하지는 않았었다. 존댓말을 하는지 반말을 하는지는 각자가 관계에 따라 알아서 했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하니까 교복과 명찰로 학년을 구분하고 위 학년에게 먼저 허리를 숙이는 게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고, 교사들도 그러라고 이야기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고등..
2017.11.26 -
어른들만의 ‘예의’
어른들만의 ‘예의’ 부모들은 조금만 청소년이 말을 하려 하면 “말버릇이 그게 뭐냐?”, “예의를 지켜라.”라고 말한다. 청소년은 성장하면서 어떤 게 옳거나 옳지 않은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말 속의 모순점이나 옳지 않은 내용을 따지게 되는 경우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의견차이가 더 벌어져 말다툼을 벌이기가 쉬워진다. 만약 어른과 청소년 사이에 의견충돌이 있게 된다면 반드시 어른이 이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른들을 청소년보다 항상 ‘위’로 보는 경향이 있고, 그 때문에 어른은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서 청소년에게만 예의를 강요할 때가 있다. 요즈음 나는 어머니와 주말마다 싸우고는 한다. 의견차이가 꽤나 클뿐더러 어머니가 나에게만 예의를 강요하는 것 때문에 언성이 높아지고, 결국 몸싸움까..
2017.11.25 -
청소년인권, 나의 인권은 무엇일까?
청소년인권, 나의 인권은 무엇일까? 나는 울산광역시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외치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나는 2016년부터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서명운동, 학생인권침해 실태조사 등을 진행했다. 우리 학교 또한 학생인권침해 사항이 많아 교칙의 제·개정이 필요하다고 느꼈는데, 교내에서 교칙을 제·개정하면서 부당함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전교 회장이고, 학생의 의견을 대변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야기는 그냥 무시되었다. 아무리 설문조사를 실시해도 이미 교사들은 틀을 정해 놓았고 학생들은 그 틀 안에 갇혀있었다. 학생들이 학교 내부에서 나서 봐도 변화가 없었다. 간혹 학생이 나설 필요가 있는 일이 생길 때, 교사들은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고, 선생님들은 떠날 사람이다.”라고 얘기하곤 한다...
2017.09.22 -
검정머리는 날라리인가요, 아닌가요?
검정머리는 날라리인가요, 아닌가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폐쇄적인 두 곳 중 하나에 꼽힌다는 ‘학교’에 대자보가 붙었다. 한 장짜리 대자보는 1학년과 2학년 건물에만, 좀 더 긴 4장짜리 대자보는 학년을 가리지 않고 모든 건물에 하나씩 붙었다. 긴 글이었음에도 사람들은 복도에서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 글은 학생 염색에 관한 대자보였고, 내가 쓴 글이었다. 지금까지 쓴 대자보만 4개, 나는 아마 “프로 대자보러”이다. 대자보를 쓰게 된 상황은 이러하다. 내 친구 A가 탈색을 해서 학교에 왔고,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을 비롯하여 따가운 말을 여러 번 듣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교칙은 원색의 염색을 불허할 뿐이다. 사람 머리에서 완전한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이 나올 수는 없으므로, 이는 효력이 ..
2017.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