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청소년(47)
-
교대지망생
교대지망생 언젠가부터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과 사랑을 받았다. 때론 그 사랑이 좋았고, 때론 그 사랑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분명했던 점은 내가 그 사랑을 받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내가 사랑받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과였다. 성적과 상장 등과 같은. 높으면 높을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나에 대한 사랑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처음엔 그래서 즐겼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을 이기적으로 만들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지고 나보다 더 사랑을 받는 모습을, 난 보게 되었다. 중학교 3년 내내 나를 괴롭혔던 것은 그것이었다. 무엇보다 그 다른 사람이 내가 가장 좋아하던 친구였기에. 그 친구보다 못하는 내 모습도 싫었고, 그 친구를 미워하는 참 이기적인..
2019.02.11 -
입시는 나에게 □다
입시는 나에게 다 나에게 입시란? 자퇴생인 나, 열아홉의 나에게 입시와 경쟁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기 전에 오늘 아침에 본 뉴스를 먼저 언급해본다. 으레 그래왔듯, 수능 날이 가까워지면 줄줄이 나오는 기사 중의 일부다. ‘수능 10일 전, 기도를 하고 있는 어머니……,’ 기사 속 ‘어머니’라고 표현된 한 사람의 모습은, 퍽 간절하고 애절해 보인다. 이 무렵에 나오는 이런 기사들에 나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던 차였다. 그때, 기사의 베댓(베스트 댓글, 추천 수가 많아 맨 위에 보이는 댓글)에는 놀라우리만치 나의 마음과 일치하는 말이 적혀있었다. ‘내 자식만 잘되게 해달라고 비는 기도는 옳지 않다. 남들을 밟고 올라서서 성공하게 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발밑의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물건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
2019.01.23 -
초등학생들의 소원, '초딩 탈출'
초등학생들의 소원, '초딩 탈출' 나는 2005년생으로, 올해 14살이다. 2018년이 된 지금에도 나는 나이로 차별받는 일이 다분하다. 특히나 내가 자주 서핑하고 즐기는 인터넷 공간에서도 이를 피해갈 수는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학교 1학년이면 더 이상 나이로 차별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던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도 나이로 차별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어째서 그토록 '초딩 탈출'을 하고 싶어 했을까? 사람들은 '김여사'와 같은 여성혐오적 단어를 쉽게 툭툭 내뱉곤 한다. '김여사'는 운전을 못 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인데, 운전을 못하는 모든 사람이 ‘여사’는 아니지 않은가? '초딩'이란 말도 '김여사'라는 단어와 비슷한 맥락에서 쓰인다. '초딩'이라는 단어는 보통 미성숙한..
2018.10.03 -
네 눈앞의 내가 청소년일 가능성
네 눈앞의 내가 청소년일 가능성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 예고편을 보고 ‘와, 대박이다’ 하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만 14세, 중학교 2학년일 때였다. 모든 요소가 내 취향을 관통했던 그 영화를 덕질하기 위해 나는 헐레벌떡 트위터로 팬 계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계정에서 활동하며 더없이 잘 맞고 유쾌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땐 그 사람들과 평생 함께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서로의 일상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누던 사이에서 툭 터놓고 말할 수 없던 것은 오직 한 가지, 내가 15살이라는 것이었다. 당시엔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아무도 내게 ‘너 나이 꼭 숨겨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사명감이 그 영화가 15금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만약 당시의 나에게 마이크를 갖다 대며 “왜 나이를 숨기려 ..
2018.10.01 -
우리는 미래의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미래의 존재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한 교사가 있었다. 6학년 당시 나의 담임이었고,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을 괴롭혔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학생을 교실 밖으로 쫓아내고 때렸다. 그 선생님이 한 “생리통은 다 엄살이다. 여자의 특권인데 그 정도도 못 참냐.”, “기모노는 남자가 돌아오면 빠르게 성관계를 하기 위해 이불로 쓰이는 옷이다.” “여자가 기가 세면 남자 기가 죽는다.” 등의 말들을 참을 수 없었다. 그를 신고하기 위해 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다. 그러나 나의 고발은 ‘어른들의 일’처럼 취급됐다. 담임은 “이건 어른들 일이니까 넌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일이나 해라.”라고 했다.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끼리 합의로 내가 넣었던 민원은 삭제됐고, 담임은 우리 반 앞에서 사과했다. 나는 아직도 합..
2018.05.12 -
그 일은 내 탓이 아니었다
그 일은 내 탓이 아니었다 가정 내 폭력은 폭력이라고 인식하기도 전에 삶에 녹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많은 경우 중에서도 내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첫 번째는 내가 받은 돈을 다 썼던 날이었다. 나이 겨우 열넷에 십만 원이라는 큰 돈을 썼다는 이유로 소위 ’엎드려 뻗쳐’ 자세를 취하게 하고는 도구로 엉덩이를 약 스무 대 정도 때렸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나를 구타한 사람은 아빠였고, 아빠란 거역하면 안 되는 존재였으니까. 거역했다가는 어떤 상황을 당할지도 모르고. 맞았던 것보다는 맞고 나서 엄마한테 투덜거렸다가 “그러게 그 많은 돈을 왜 썼니?”라는 말을 들었던 게 더 기억에 남는다. 두 번째는 처음으로 성적이 80점대로 내려갔던 날이었다. “내가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마인데 이..
2018.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