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은 내 탓이 아니었다

2018. 5. 11. 21:14극한직업청소년



그 일은 내 탓이 아니었다


 가정 내 폭력은 폭력이라고 인식하기도 전에 삶에 녹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많은 경우 중에서도 내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첫 번째는 내가 받은 돈을 다 썼던 날이었다. 나이 겨우 열넷에 십만 원이라는 큰 돈을 썼다는 이유로 소위 ’엎드려 뻗쳐’ 자세를 취하게 하고는 도구로 엉덩이를 약 스무 대 정도 때렸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나를 구타한 사람은 아빠였고, 아빠란 거역하면 안 되는 존재였으니까. 거역했다가는 어떤 상황을 당할지도 모르고. 맞았던 것보다는 맞고 나서 엄마한테 투덜거렸다가 “그러게 그 많은 돈을 왜 썼니?”라는 말을 들었던 게 더 기억에 남는다.


 두 번째는 처음으로 성적이 80점대로 내려갔던 날이었다. “내가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마인데 이것밖에 못 하느냐”라고 하며 배드민턴채 뒷부분으로 내 종아리를 수회 구타했다. 피멍이 터져 부끄러워 교복을 채 못 입고 다녔다. 사진을 찍어 두곤 경찰서에 갔다가 ”그래도 아버지인데”, “너 도대체 뭘 잘못했냐?” 등의 반말 섞인 2차 가해를 당했다. 더 웃긴 건 나는 이걸 듣고 반성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인데 내가 좀 심했나? 내가 잘못해서 맞은 건데 과민반응했나 싶었다. 그때는 그랬다.


 이 사건에서 내가 반성하게 된 것은 바로 경찰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체벌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했던 때문이다. 첫 번째 사건과 같이 나를 ‘키워 준 은혜도 모르는’ 사람으로 몰고 그것을 체벌보다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 친권자를 제지하기보다는 나를 탓했기 때문이다.


 맞을 만한 일은 세상에 없다. 설사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게 폭력을 감당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러나 면전에 대고 이런 말을 하기 두렵다. 왜 이렇게까지 두려워하고, 반성이 필요하지 않은 일에 반성하고 죄책감을 느끼는지 생각해 봤다.


 한국 사회에서 ‘모부’란 폭력을 행사해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는 존재쯤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이러한 사건들에서 나는 왜 그러냐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묻기는커녕 제 잘못을 찾고 반성하기 바빴다. 나를 이렇게 만든 요인이 어떻게든 존재하리라고 믿었다.

 나는 청소년을 모부의 소유물로 보는 악습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자식임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폭력을 고발하기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은 자식에게 희생해 늙고 힘없어지는 모부를 사랑하거나 연민해야 한다는 생각을 너무나 당연하게 학습해 왔다. 이런 시선과 유아기부터 학습되는 모부 신격화, 모부가 투자한만큼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져야만 폭력을 폭력으로 보고 고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시선의 변화가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 숀 (경남지역 청소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