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6. 21:11ㆍ극한직업청소년
금지와 해방은 한 쌍이다
올해로 스무 살이 되었다. 이제 어느 편의점을 가든 담배를 살 때 눈치 볼 필요가 없어졌다. 스무 살이 되기 하루 전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이제 스무 살이니 술, 담배 다 할 수 있겠다며 좋냐고 물었다. 난 이미 다 하고 있었는데 뭐가 좋겠냐고 되물었다. 사람들은 내 등을 툭 치며 “그래도 이제 합법적이잖아”라고 했다.
나는 청소년기가 끝날 무렵 탈가정을 했다. 그러면서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신분증을 빌려서 클럽도 가고 애인과 섹스도 했다. 나는 나에게 금기시되는 모든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들었다. 꼰대같은 비청소년들이 흔히 걱정하는, ‘아무런 규제 없고 중구난방인’ 생활을 누렸다는 뜻이다. 이제 나는 스무 살이고, 전부터 내가 즐기고 있었던 모든 것을 제약 없이,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지금, 나는 “외않되?”를 생각한다.
앞서 말한 ‘금지된 것들’을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딱히 해방도, 자유도, 흥분도 아니었다. 어떻게 써야 할지 애매한 느낌이지만, 나는 그저 술 마시고 싶으니까 마셨고, 섹스하고 싶으니까 섹스했다. 흔히 SNS 등에서 보이는 ‘스트레스 받아서 오늘 한잔 마셨다~’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일명 ‘사회생활’이라고 하는 것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 시작하며 비청소년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냥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다. 술, 담배, 섹스는 누구나 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 누가 한다고 해서 눈에 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최근 연나이 20살이 된 또래 친구들이 하나둘씩 카톡 프로필 사진을 '술 마시는 광경'으로 바꾸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몹시 달콤하게 반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사진들이다. 그것들을 보니 나와 그들의 상황이 다름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생각보다 별 것 아니었다고 느낀 것들이 이들에게 그토록 인상적인 해방, 자유와 흥분의 기억으로 남은 것은 단지 그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역시 어떤 행위를 특별하고 불건전하게 만드는 것은 단지 19금이라는 표시, 금지 자체인 것 같다.
-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