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30. 14:40ㆍ극한직업청소년
한 남자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차 안에서 나오는 라디오는 "한 차량이 고속도로를 역주행하고 있으니 조심하시길 바란다."고 알리고 있었다. 그것을 듣고 그가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한 대는 무슨, 수백 대는 되겠구만.."이었다. 차를 운전하고 있는 남자는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거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아빠'를 무서운, 권위적인, 무조건 따라야 하는 존재로 여겼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를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행동했었다. 반항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고, 그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아빠'의 기침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항상 눈치를 봐야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걸 가끔씩 느끼고는 한다.
위에서 잠깐 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아빠'라는 존재를 잘 설명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오히려 자신이 아닌 다른 모두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사람이 바로 나의 '아빠'였고, 나는 그 '잘못된 존재'였다. 그 '잘못된 존재'를 '바로잡기'위해 '아빠'는 무력을 사용했다.
어렸을 때, 밥을 먹던 중 실수로 밥상에 있던 국을 엎질렀던 적이 있었다. 국물이 밥상을 뒤덮었고, 국물이 묻은 옷엔 된장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난 그 ‘죄’로 뒷덜미가 잡힌 채로 동치미속으로 머리가 처박혀야만 했다. 또, 방에서 레고를 가지고 놀던 나에게 다가와서는 갑자기 레고들을 발로 차버리고는 휙 가버린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매질은 기본이고, 주먹을 휘두르고, 골프채를 휘두르고, 옷장이나 이불장에 가두기도 했었으니 어릴 때의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그래서 나는 ‘아빠’를 어떻게 여겼고, 지금은 어떻게 여기는지 몸으로 느끼고 있다.
오로지 주먹만 나간 것도 아니었다. 나를 ‘씹지’않으면 못 배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언제나 날 보면 제일 먼저 꺼내는 말은 언제나 시비였다. 최근의 이야기다. 민중연합당의 전당대회가 있었던 날이었다. 뉴스에선 ‘통진당 잔존세력’, ‘이석기의 부활’이라며 떠들어 댔었다. ‘아빠’는 나에게 “이거 봤냐? 이석기의 부활, 통진당 잔존세력이랜다.”라고 운을 띄웠다. “무슨 말이냐”물으면 “네 얘기잖아?”라고 눈을 부릅뜨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하곤 하는 사람이었다. 논리는 매우 괴상했다. 학교에 지각할 상황에 놓여, 카카오택시를 부르겠다고 하고 나갔지만, ‘아빠’는 차를 끌고나와 “타라”고 위협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고선 “넌 그따구로 왜사냐”고 말한다던가, 지갑을 두고 나오니 “일찍 자라”는 잔소리만 말하곤 했다. 오로지 자신이 볼 때 ‘아니꼬운’것들을 지적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이 ‘폭력’들을 저지른 뒤에는 또 다른 ‘폭력’이 다가온다. ‘카톡’으로 날아 들어오는 긴 글. “네가 못났으니
까 내가 이러는 거다”, “똑바로 행동해라”, “넌 아무리 해도 안 된다”라는 망언들을 그저 고급스런 표현들로 표현했을 뿐이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는 않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러고는 그날 밤에 나에게 돈을 쥐어주며 상황을 끝내려 한다. “이제 됐지? 그만하자”고 말한 뒤 자러 들어가는 ‘아빠’를 난 그저 멍하니 볼 뿐이었다. 난 침대에 누워 뭐가 그리 억울한지 꺽꺽 울기만 했다.
그래서 나에게 ‘아빠’라는 존재는 사실상 ‘남’과도 같을 뿐이다. 계속 글에 아빠를 쓸 때 따옴표를 쓴 이유가 바로 이 이유다. 나에게 아빠라는 존재는 없기 때문에. 오로지 오물을 뒤집어 쓴 괴물이 ‘아빠’행세를 하고 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기고: 박상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