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30. 14:29ㆍ극한직업청소년
우리 아버지는, ‘평소에는’ 참 자상한 분이었다. 자식들의 학교 공부를 도와주고, 여름에는 자식들이 좋아하는 과일로 화채를 만들어주는 것을 좋아하고, 당신께서 기분이 좋으신 날에는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즐겁게 요리하던 자상한 분이었다.
평소에는 그랬다. 그리고 동시에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분이었다.
아버지의 분노조절장애는 내 유년시절을 불행하게 했다. 스포츠 경기 시청과 게임에 중독됐던 아버지가 응원하는 경기의 실적이 좋지 않은 날에는 가족들이 아버지의 눈치를 봐야만 했고, 갈수록 어려워지던 경제상황은 부모님의 불화를 야기했다.
내가 처음으로 시외에 나가 봉사활동을 하고 온 날, 나는 아버지에게 밟혀야 했다.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은 위험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것을 싫어했고, 마찬가지로 내 뜻을 굴복당하고 싶지 않아 대들었던 나는 욕설을 밥 먹듯 들으며 자라야 했다. 경찰은 가정폭력에 관대했다. 수년간 수차례의 신고가 있었지만 훈방조치만 있었을 뿐, 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중에야 들은 말이지만 우리 엄마는 출동한 경찰로부터 ‘신고를 자제해 달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가정폭력은 '가정 내 해결이 우선'이라고 대답한 경찰관이 절반을 넘는다
여섯 번의 자상한 아버지는 우리를 웃게 했지만, 네 번의 무서운 아버지는 가족을 지치게 했다. 연초에 나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들 앞에서 아버지는 칼을 휘둘렀고, 아버지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법원으로부터 보호조치를 받고 두 달간 격리된 부모님은 그동안 바로잡지 못했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끝에 법적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걸을 것을 협의하셨다.
나는 패륜아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어떻게 자식이 부모를 신고할 수 있냐’고 했다. 패륜이 무엇일까? 사회적 위계가 질서유지에 편리함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위계는 약자에게 폭력으로 작용할 때가 분명히 존재한다. 내가 그랬다. 가정에서 청소년인 나는 약자였고, 나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어른’의 뜻에 반기를 든 나는 패륜아가 되었다.
이 사회가 가정폭력에 관대한 것을 나는 자라면서 똑똑히 경험했다. 그들이 나를 보호할 수 있는지,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지는 관심조차 없으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권리를 당연하게 부여한다. 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나는 이런 가정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의 재량에 따른 삶을 경험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격리된 후 마음의 안정을 느끼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반복했을 것이다. 지금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나를 괴롭게 하지만, 패륜에 대한 벌이라면 달다. 대한민국 청소년으로 태어난 죄 치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