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과 민주주의

2016. 9. 17. 21:10극한직업청소년


  "민주주의는 만 19세 넘어 투표를 할 수 있게 될 때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될 때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지금 당장 청소년들의 현실 속에서도 실현되어야 하는 가치이고우리는 그것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



  12년 가까이 울산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학교는 입시공부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라는 말. ‘전인적인 교육을 시킨다면서 인성교육, 예절교육을 하고, 민주주의를 학습시킨다면서 반장도 뽑고 회장도 뽑는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학습이라면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민주주의란 기껏해야 기표소에 들어가 어딘가에 도장을 찍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의 학습? 동등한 대접이 없는데...


  민주주의의 출발은 개인을 평등한 권리를 가진 주체로 하여 동등한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라는 공간은 대놓고 교사가 '청소년은 뇌가 아직 덜 발달해서 짐승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해도 아무런 물의가 없는 곳이다. 학생은 교사나 어른들에 의해 선도받고 보호받아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받고, 머리털 모양과 손톱 길이조차 자신이 결정하지 못한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고들 말을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학교의 주인 대접을 받는 사람은 교사나 교장, 교감 정도이고, 가끔 외부손님이나 등록금 내는 학부모들이 손님 대접을 받을 뿐이다. 학생은 학교에서 주인 대접도 손님 대접도 받지 못한다. 교육청에서 감사 나온다고 하면 학교를 쓸고 닦도록 명령받는 하인 취급, 때리고 욕해도 괜찮은 노예 취급을 당한다고 생각이 들 때도 많다.



민주주의는 다수결, 대장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학년 초에 체벌 대신 벌금제를 도입하자던 선생님께서 벌금 목록을 보여주시면서 강요하고 싶지 않으니 거수 투표로 시행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셨었다. “반대하는 사람 손 들어.” 라고 하시자 나를 포함한 두 명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께선 만장일치로 통과를 원하셨던 건지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각과 잠자기를 수시로 자유롭게 하고 싶은거냐”, “학교 생활 불량하게 하고 싶은거냐라는 둥 예비 불량학생들을 '설득' 했었다. 그러나 손을 들지 않은 학생들에게 비밀투표로 다시 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선생님께서 반대하는 건 개인 자유이니까 눈치 보지말고 싫은 사람은 벌금제 안해도 된다고, 상응하는 다른 벌, 예를 들면 체벌같은 걸로 대체해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다시 반대하는 사람 손 들으라고 하셨다. 나와 그 학생 2명만 다시 손을 들었고, 선생님께선 이 2명은 다른 벌을 하기로 하고 우리 학급은 벌금제로 한다고 발표하셨다. 그러면서 이게 민주주의 아니가. 다수결. 다수결대로.”라고 하셨다.


  이런 일도 있었다. 체육시간에 체육관에서 종이 친 후 선생님이 오시길 기다리면서 서로 이야기하며 무리지어 있었다. 선생님이 오시고 체육 부장한테 줄 세우기를 명령하신 후 체육부장이 이리저리 소리를 쳐도 깔끔한 대열이 안 만들어지는 것을 보시곤 이후에 훈계를 하셨다. 단체에서 민주적으로 뽑힌 사람의 말을 들어야 민주시민이라고, 단체 생활에서는 한 사람의 잘못이 모두의 책임이라고, 그러니 마땅히 민주시민이면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지말고 대장의 명령을 모두 따라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학생들한테 바라는 '민주적인' 상명하달이 잘 이루어지는 조직의 예로 군대를 드셨는데, 그 군대 계급을 민주적이라고 하신 건지 행정부 수반이 선거로 뽑혔으니 민주적이라 하신 건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건지 궁금했지만 감히 여쭤볼 분위기가 아니었다.




▲ 경기도 소방학교의 모습. 그 교사가 바란 '민주주의'는 이런 모습인가?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이분들의 민주주의에 찬성 할 수 없다. 분명 민주주의가 다수결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교실에서의 교사와 같이 강력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한 편을 비방하는 발언을 하는데,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투표로 뽑았다고 해서 대표자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게 민주시민의 자세일까


  반장 선거, 회장 선거는 민주적인가? 비밀투표를 보장하고 선거 과정에서 부정이 일어나지 않는 한에서 절차상 민주주의는 확보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뽑은 학생들의 대표는 그저 교사의 심부름꾼으로서, ‘선도부로서 교사 대신 학생들을 통제하는 대리자 역할만 할 뿐이다. 학생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학교의 유일한 공식 집단인 학생회마저도 가장 일상적으로 하는 업무는 학생의 이익을 위하기는커녕 교사들의 말을 따라 학생들을 선도하는 것이다. 학생회의 권한을 명시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독립된 예산,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등이 보장되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왜 말을 못할까. 뻔한 이유를 꼽자면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생님 말 안 듣는 학생은 나쁜 학생이라는 인식이 우리 학생들에게도 뿌리 깊게 박혀 있고, 교사가 학생을 통제하거나 학생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엄청나게 많은 반면 그 반대는 너무나 드물기 때문이다. 또 학교에서의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민주주의, 학생인권, 나이주의와 권위주의 등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목소리를 내어 삶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기엔 입시로의 카운트다운이 너무 살벌하기 때문이다. 당장 이 글을 쓰는 나만해도 수능 D-88, 다음 주 수시 원서 접수, 내일의 중간고사 일정을 생각하면 심장이 죄어드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청소년운동에서 이야기해왔던 말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사는 인간이다아무리 달콤한 미래를 약속한다 해도 현재의 인권침해가 용서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만 19세 넘어 투표를 할 수 있게 될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될 때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청소년들의 현실 속에서도 실현되어야 하는 가치이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 시조새

입시 외의 것은 다 쓸데없다고 세뇌된 자아에 끌려가지 않으려 발버둥 중인 청소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