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15. 19:56ㆍ극한직업청소년
“부모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대단하세요”
그건 대단한 일도 아니고, 대단한 일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인정받아야 하는 삶
태어난 지 18년째, 부모와 함께 산지도 18년째. 청소년이자 자식이었던 과거를 돌이켜보면 내 삶은 언제나 인정받아야 하는 삶이었다. 내 성적을, 내 시간을, 내 생각을, 나를.
학교에서 성적표가 나오면 부모에게 보고해야 했고, 내 성적이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않을까봐 마음 졸여야 했다.
밤늦게 집에 들어온 날이면 이 시간까지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부모에게 보고해야 했고, 내 대답이 그들의 맘에 들지 않으면 바로 혼이 났다.
부모에게 용기 내어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내가 자퇴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그들이 납득할 때까지 끊임없이 설명해야 했다. 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자퇴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 무엇을 얻었을까. 그들의 인정? 글쎄.. 나는 이 수많은 ‘보고’를 통해 나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나를 설명하는 일에 지쳤고, 그들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고 싶어졌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에게 비밀이 없기를 바라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커밍아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라면,
나는 ‘자식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활동이 불편했던 이유
이번 2016퀴어문화축제에서 가장 핫 했던 이슈를 꼽으라면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아닐까. 성소수자인 자식을 지지하는 부모들의 모임. 이들은 이번 퀴어문화축제에서 프리허그 부스를 운영하며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성소수자들을 ‘부모의 마음으로’ 안아주었다. 또, 이 프리허그 영상이 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많은 화제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모임의 취지에 공감하고 위로받았다. 나 역시 그 영상을 보았고,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활동가가 인터뷰한 기사도 여럿 보았다. 하지만 나는 위로받기보다, 더 비참해졌다.
한국에서 2013년 만들어지고 2014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매달 두 번째 토요일 정기모임을 갖는다. 보통 30~40명 정도가 모인다. 성소수자의 부모도 있고, 성소수자들도 온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커밍아웃을 준비하는 자식에게 팁을 주기도하고, 부모에게는 자식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부모모임에서 성소수자들이 많이 하는 고민 상담은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할지 말지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일찍 말하기를 바란다. 혼자만 비밀을 가지고 끙끙 거렸을 걸 생각하면 너무 안쓰럽다. 나는 아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부모 성향을 들어보면 좀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독립할 수 있을 때 말하라고 조언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이 비밀이 없기를 바라지만 막상 커밍아웃을 하면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또 힘든 일이라고 한다. 지인씨는 커밍아웃 이후 부모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만약 부모가 이해를 못해준다고 해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커밍아웃 이후 받아들일 시간을 주라고 조언했다.
-2016.06.22. 미디어오늘 인터뷰 ‘애들도 울고, 엄마들도 울고’ 중 일부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에게 비밀이 없기를 바라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커밍아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라면, 나는 ‘자식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내가 상처받을 것을 감수하고 다 말해야 할까? 아니면,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나를 숨기고, 거짓말하고, 부정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만약 커밍아웃을 했는데 부모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부모에게 받아들일 시간을 주고 한없이 기다려야 하나? 내가 왜??
‘부모’라는 위치에서 자식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
작년에 나는 자퇴했다. 자퇴를 처음 마음먹고, 자퇴를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부모는 자퇴하겠다는 나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는 내 인생을 걸고 그들을 설득해야 했다. 덤덤하게 말해보기도 하고, 울면서 소리쳐보기도 하고, 편지를 써보기도 하고, 나중에 부모를 원망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기에 각서도 썼다. 하지만 그들이 이런 나를 받아들일 때까지 나는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어야 했다. 결국엔 고졸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그들은 나의 자퇴를 ‘허락’해 주었다. 약속이라기 보단, 협박에 가까웠지만.
이렇게 자퇴를 하고 자퇴한 것을 주변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우와 너희 부모님 대단하시다! 부모입장에서 그러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였다. 도대체 그 ‘부모입장’이라는 게 뭘까. 살인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우와 넌 살인자가 아니야! 대단해!!” 하고 칭찬하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자퇴를 ‘허락’해준 부모도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자퇴를 하는 것은 그 누구의 동의도 필요 없어야 하는 일이고, 나의 자퇴에 동의해주었다고 해서 ‘대단한 일’ 취급하는 건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했던 나의 노력과 그 과정에서 받았던 상처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나빴다.
성소수자 부모모임도 마찬가지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관련 기사나 게시물의 댓글 대부분이 성소수자 혐오발언이 아닌 이상 “부모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대단하세요” 라는 식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건 대단한 일도 아니고, 대단한 일이 되어서도 안 된다.
사실 비성소수자가 성소수자를 이해한다거나, 인정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은 누군가 감히 이해하거나 인정할 것이 아니다. 또,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비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사이의 권력 위계를 증명한다. 비성소수자는 성소수자에게 이해받지 않아도 괜찮다. 왜냐하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비성소수자는 그 존재 자체로 ‘사람’이고, 인권이 보장된다. 하지만 성소수자는 그렇지 않다. 비성소수자의 공감과 인정이 있어야만 그들의 권리가 보장된다.
이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자식의 인정이 필요 없다. 밤늦게 들어온 이유를 일일이 자식에게 보고하고 인정받는 부모는 거의 없지 않나. 하지만 자식은 언제나 인정받아야 하는 존재다. 하나의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부모의 소유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특히, 거의 모든 일을 할 때 절차적으로 법적 보호자(부모)의 동의가 필요한 청소년일수록 더 그렇다.
이런 사회에서, 비성소수자 부모가 성소수자 자식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건 좀 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차라리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아요” 라는 식의 퍼포먼스를 했다면 훨씬 나았을 것 같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성소수자 자식이 부모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부모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이다. 누군가의 당연한 권리가 ‘부모’라는 한 개인의 생각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나는 이제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태양
성소수자 자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