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5. 17:37ㆍ극한직업청소년
어리기에 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웃고 즐기며 밥을 먹는 곳
몸도 마음도 위험 속에 던져진 풍선처럼 언제 펑하고 망가질지 모르겠습니다
아수나로에 잠시 머물다 떠난 대학생입니다. 지난 3월 한 일식 레스토랑에서 시작한 아르바이트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어 지면을 빌립니다.
제가 일하는 가게는 100석 규모로 바쁠 때는 몇 시간이고 숨돌릴 틈이 없습니다. 손님이 들어오면 안내해드리고,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드리고, 손님이 나가시면 테이블을 처음 상태로 치우는 작업이 26개의 테이블 개수만큼 겹쳐서 쏟아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월급을 받는 날이면 괜히 기분이 나빠집니다. (아, 고작 이 푼돈을 위해 나는ㅡ)
나는 한 시간에 6300원짜리 서빙기계인가
앞서 말한 일들을 바삐 처리하다 보면 지금 내가 누구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나는 컨베이어 벨트 앞의 몽키스패너인가, 아니면 한 시간에 6300원짜리 서빙기계인가.) 하지만 원래 일이란 명료한 것입니다. 노동력을 제공하면 돈을 받는 단순한 논리 속에서 저의 개성이나 손님 각각의 얼굴, 목소리,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저를 잃어가는 속도로 손님들도 말을 잃고, 제가 세상을 잃어가는 기분으로 손님들은 밥을 입속으로 밀어넣는 항아리가 되어갑니다. 그런 알 수 없는 상태로 일하다보면 시간도 참 잘 흘러서 어느덧 밤이 됩니다. 그렇게 벌써 여러 번의 주말을 보냈습니다.
이미 힘든 이곳에서 저는 불행히도 20살이고, 머리가 노랗고, 인상이 차갑고, 그래서 저는 갑질에 시달립니다. 손님에게, 사장님에게, 쓰레기 처리장의 아저씨에게, 주변 가게의 다른 손님들에게도 시달리다 보면 제 인생의 수많았던 죄를 하나씩 갚아간다는 기분이 듭니다.
한 번은 손님께 음식을 가져다 드리다 조금 흘려서 새로 가져다드렸는데 몇 분 후 저를 부르셔서는
"학생, 이거 봐. 서빙을 하다가 음식을 흘리면 그걸 새로 해서 가져다주고 그렇게 해야 할 거 아니야"
"네. 새로 가져다드렸는데, 음식에 문제가 있으셨습니까?"
"아니 서비스로 음료수나 뭐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이걸 가져다주면 나는 뭐 손님도 아니냐고. 잘못을 했으면 그걸 죄송하다고 하고 치우는 게 아니라 손님이 기분 나쁘지 않게 그렇게 해야 할 거 아니야“
“하지만 손님...”
“됐고, 사장 불러와. 머리 색깔 하고는 참... 요즘 어린 것들 이래서 문제라니까 생긴 것부터가 예의가 없어” (제가 이렇게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여러분!)
졸지에 무례하게 생긴 사람이 되었습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면 사장님이 알아서 오십니다. 더러운 기분으로 다른 일을 하러 갑니다.
혹은 바깥의 음식 모형과 나온 음식이 다르다고 제게 삿대질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평생 못 들어본 사기꾼 소리를 다 들으며 저는 잘못했고 죄인이었고 죄송할 따름이었고, 동시에 어린 것이었고 노란 머리였고, 한낱 알바생이었습니다. 슬픔이 찾아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 저를 부릅니다. 미천한 저는 노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네! 하고 달려갑니다. 기분 나빠하기에는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곳입니다.
△ "사람을 죽이는 시스템을 멈춰라" "우리는 위험한 일자리를 거부한다" "알바도 안전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지난 6/4 알바노조는 구의역사고를 추모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안전한 노동환경 보장을 요구하는 행진을 진행했다.
제공 : 알바노조
몸도 마음도 위험 속에 던져진 풍선처럼
지난 주말 퀴어퍼레이드가 있어 알바를 하루 쉬었습니다. 하루 쉬면서 보니 아침에는 하늘도 예쁘고 바람도 불고, 간간히 비가 내리면 천막 밑에서 빗소리를 듣는 것도 그렇게 좋았습니다. 실은 몇 주 전부터 그만두고 싶다고 말해왔는데 사장님께서 거부하셔서 계속 나가는 중이었고, 그 이유는 사장님이 말 안 듣는 알바생 뒷통수를 때려서 한 무리가 단체로 그만둬서 사람이 적어서이고, 전 그냥 안 나가버리면 안 될까 하는 마음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침마다 지하철을 타고 일하러 갑니다. 어리기에 죄인이 되는 곳, 어리기에 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웃고 즐기며 밥을 먹는 곳, 머리가 노란 사람이라 욕을 먹어도 괜찮으며, 피어싱을 했으므로 싸가지 없는 놈이며, 추레한 유니폼을 입고 있으므로 어린 아이가 달려와 내게 부딪히면 "더럽게" 하면서 날 밀치고 가는 부모들이 계시는 곳. 과도한 짐을 나르다 벌써 발을 두 번이나 삐었고 손톱 하나가 빠질 뻔 했고 몸도 마음도 위험 속에 던져진 풍선처럼 언제 펑하고 망가질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다시 세상 속으로 갑니다. 가면서 생각합니다. 과연 무엇이 저를 지켜줄 수 있을까요. 안전하게.
이드
퀴어한 삶 영위하는 중입니다.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