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25. 09:58ㆍ극한직업청소년
극한직업청소년-자유기고글(3)
:: 덕질에도 우열이 있더냐
비록 지금은 이십대가 되었지만, 나의 두발단속이나 체벌 등, 중고교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억울하다 싶은 일들이 많다. ‘덕질’도 그 중 하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다가 애니메이션 OST 앨범을 구매하고 만화책과 라이트노벨을 사 모으는 ‘오타쿠’가 되었던 것이다. 중3 때 소망 중 하나가 고등학생이 되면 용돈을 모아서 코믹월드로 원정을 가는 것이었으니참.
오타쿠로 살아가는 것은 별로 순탄한 일은 아니었다. 부모님들에게는 이해받기 어려웠고,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학교 안에서 같이 덕질할 사람을 찾기도 어렵고 때로는 ‘이상한 애’라는 눈초리까지 받아야 했던 것이다. 노래방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노래라도 불렀다가는 싸늘해지는 분위기를 감수해야 했다. 다행히 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덕질하는 오타쿠라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괴롭힘이나 따돌림을 당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런 사례들도 심심찮게 들려왔기에 어느 정도 두려움을 가졌다. 그리고 같은 취미를 공유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눈치 보며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었다. 그런 답답함을 해소하려고 고등학교 때는 만화동아리에 들어갔다. 만화동아리 사람들은 학교에서 ‘괴짜’, ‘오타쿠 집단’ 취급을 받긴 했지만 적어도 그 동아리에서 놀 때는 마음은 편했다. 다들 ‘파는’ 장르/분야는 달랐어도 어쨌건 서로의 취향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을 용인했기 때문이었다.
괜히 억울하고 차별받는 것 같다고 느꼈던 것 중 하나는 그거다. 아이돌 팬클럽에 활동을 하고 필통이나 책 표지를 연예인 사진으로 싸고 굿즈를 들고 다니는 애들은 별로 눈치를 보지 않는다. 특별히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노래도 듣고 장기자랑도 그런 걸로 나간다. 아이돌이나 연예인 또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나, 만화 속 캐릭터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이나 크게 다른 것도 없지 않은가? 결국 나와 같은 사람들이 주변 눈치를 봐야 하는 이유는 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취향을 가진 소수라는 것, 그 이유 하나뿐이다. 대다수의 주류와 다른 소수를 인정하지 않는 학교의 분위기, 아니 우리 사회의 분위기. 그것이 덕질에도 우열을 만드는 듯싶다.
-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