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청소년 :: 뮤지컬에 빠지다

2016. 2. 25. 09:28극한직업청소년

극한직업청소년-자유기고글(2)

:: 뮤지컬에 빠지다







 내가 덕질이라는 것을 시작한 것은 대충 잡아서 중2 중간쯤이었다. 나는 중2 때 남들과는 달리 나에게는 무언가에 깊이 빠져본 적이 없어서 항상 '나는 뭐지? 나는 왜 아무것도 좋아하는 게 없어?' 라며 괴로워했었다. 그래서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무작정 내키는 대로 여러 가지를 해봤지만 무엇 하나 이거다! 하고 끌릴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다! 중2 무렵 우연하게 음악시간에 본 뮤지컬 영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뮤지컬에 어마무시한 덕력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가볍게 음악 모으기였다. 뮤지컬 노래들은 하나같이 전부 좋아서 노래 모으는 일은 쉽고 그저 좋았다. 학교에서 친구 관계도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것에 신경 쓸 일없이 오로지 음악 모으기에만 열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 휴대폰의 500곡 이상이 뮤지컬과 오페라로 가득 찼을 때 그 희열이란!


 두 번째로는 뮤지컬 감상이었다. 뮤지컬을 좋아한다 하면서 제대로 된 뮤지컬을 영화 말고는 관람해본 적이 없어 항상 아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웬만한 뮤지컬들은 전부 엄청난 고가였고 내 한 달 용돈은 2만원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용돈을 세달간 토 나오게 모아서 2층 앞자리에 학생할인으로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볼 수 있었다. 그 후에 다른 공연을 찾다가 대학로라는 환상의 공간을 알게 되어 자주는 못가고 경제적 여유가 생겼을 때 (다른 일을 비틀어 짜 여유를 만들어냈을 때) 몇 번 공연을 보러 다녔었다. 그 때 아마 돈 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내 세 번째가 내 덕질 중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내가 직접 뮤지컬 공연하는 것이었다. 음악 모으기와 뮤지컬 관람만으로는 내 넘치는 덕력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마치 애니덕들이 코스프레에 빠지듯, 나는 자연스레 뮤지컬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했다. 어떻게 무대에 오를 수 없을까 고민하던 중 서울의 한 연기&뮤지컬 학원에서 저렴한 가격으로(사실 나한테는 저렴하지 않았다.) 세 달 만에 대학로 무대에 오를 수 있게 해준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반신반의로 정성껏 지원서를 작성하여 보냈고 그 곳에서는 흔쾌히 통과시켜주었다. 통과 받고 나는 부모님께 죽어라 빌어야했다. 울고불고 언니까지 동원시켜 정말 딸 파업 운동을 벌이고 나서야 용돈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겨우 허락받았다. 나는 그렇게 부모님의 따가운 눈초리를 뒤로하고 매주 토요일마다 뮤지컬을 배우러 서울을 다녔다. 그 때 엄마는 정말 교통비와 수강료만 줬기 때문에 용돈도 없었던 나는 토요일은 종일을 굶어야했다. 그렇게 세 달을 다니고 대학로에서 무료 공연을 올렸다. 그리고 올려보고 나서 안 사실은, 덕질은 그냥 멀리서 지켜보는 게 제일이라는 것이었다.


뮤지컬에 빠져있으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점들이 많았다. 주위에서는 '그래도 좋아하는 거 하는 건데 힘든 건 없지?' 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아니에요! 일단 무엇보다 돈이 없었고, 경제적 지원을 부모님에게서밖에 받지 못하니 늘 긴장해야 했다. 사소한 일로 잡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예로 들어, 성적이 내려가면 갑자기 지원을 끊는다고 협박 하거나 조금 반항을 하면 바로 '돈은 누가 내주는거냐' 며 꼬리를 잡히거나 했기 때문에.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알바를 해본 적 없지만 부모님이 고용주라면 그건 분명 악덕 갑일 것이다. 또 힘든 건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심적으로 지치는 것도 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데 주위 시선은 항상 아니꼽다. '학생이 공부나 할 것이지' 라는 말을 아마 그 때 가장 많이 듣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뮤지컬은 매우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었고 중학생 때처럼 뮤지컬만 파기에는 시간도 돈도 부족하기에 현재는 모아둔 음악을 듣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이돌이던 애니던 뮤지컬이던 뭐든 파고드는 게 힘든 것 같다.



- 장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