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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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 나는 어릴때부터 홀로 생각에 잠기는걸 좋아했다. 아무말 없이 조용히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거나 아니면 잠을 자거나 말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싫은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어울리고싶은 마음은 없었다. 19살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 긴 삶은 아니지만 꽤나 많은 관계를 거치며 즐겁고 실망하며 여러가지 관계를 배워왔다. 이러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완만한 관계를 유지하는건 내게 큰 스트레스였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셀 수 없이 많은 아이들과 의견충돌을 빚었고 그럴 때마다 버티기 버거웠고 사람에게 실망했다. 그렇기에 나는 학교라는 공간이 힘들었다. 타인과 접촉하는 일은 내게 끊임없는 스트레스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나는 홀로 공부하고 탐구하는걸 좋..
2018.11.07 -
대학이라는 ‘보험’을 들지 않기로 했다.
대학이라는 ‘보험’을 들지 않기로 했다. 1000명이 성공을 위해 줄 선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고등학교 2학년 당시 평균 8등급이던 나는 아마 1000번째 였을 것이다. 왜 그렇게 공부를 못했느냐고? 일단 우리집은 가난해서 사교육 같은 건 시킬 여유가 없었다. 또한 우리 부모님은 자신들의 선택을 억지로 강요하는 분들이 아니었다. 대신 모든 선택은 나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학교공부가 더럽게 재미없었다. 인생의 절반을 학교에서 보내는데 학교에서 하는 말이 ‘공부해야 먹고 살 수 있다.’라면 어찌 펜 한 번 들어보려 시도 한 번 안 해 봤겠는가. 게임 좋아하던 나에게 학교공부는 그 여러 번의 시도들이 좌절될 정도로 오버워치보다 가치가 없었다. 입시경쟁은 생존싸움이다. 대학..
2018.11.06 -
사범대 학생의 체벌거부선언문 - 예비교사로서 체벌을 거부한다
사범대 학생의 체벌거부선언문― 예비교사로서 체벌을 거부한다 난 예비교사지만 학교에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학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당했던 체벌인데, 다른 학생들이 복도에서 시끄럽게 뛰어다닐때 갑자기 교사가 내 귀를 잡고 교무실로 끌고 갔던 사건이다. 너무 당황스럽고 귀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교무실 앞에 가서 귀를 놓자 난 아무것도 안했다고 북받쳐 말했고, 교사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돌아가보라고 했었다. 내 기억의 많은 교사들은 가해자다. 체벌을 금지한 초중등교육법에도 불구하고 신념이 있다는 듯이 꿋꿋이 학생들을 때리고 수고로운 사랑의 매를 자랑스러워하던 뿌리깊은 가해자들이었다. 학생들은 때리면 말을 듣는다는 것이 오랜세월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였고 그들의 교육철학이었다..
2018.10.12 -
교사의 체벌거부선언문 - 아직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체벌 문제를 없애기 위해, 나는 선언합니다
교사 체벌거부선언문― 아직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체벌 문제를 없애기 위해, 나는 선언합니다 나는 체벌이 공기처럼 당연한 시대와 장소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 짧게는 하루 6시간, 길게는 15시간 동안 200일 남짓 출석해야만 했던 학교. 거기서 매일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단지 찰나의 순간에 이뤄지는 체벌 사건이 단 한 번이라도 일어나면, 나는 몇 주 동안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우울감에 시달려야 했다. 초등학교 때 담임교사가 축구공을 내 얼굴을 향해 차 뺨을 맞았던 일, 중학교 때 담임 교사가 내 등을 손바닥으로 세게 쳤던 일, 고등학교 때 담임 교사가 내 뺨을 세게 후려쳤던 일. 이런 체벌들은 신체적으로도 너무나 아팠지만 이로 인한 모멸감과 수치스러운 감정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고, 십여..
2018.05.14 -
부모의 체벌거부선언문 - ‘사랑의 매’는 훈육이 아닌 가정폭력이다
부모의 체벌거부선언문― ‘사랑의 매’는 훈육이 아닌 가정폭력이다 얼마 전 딸에게 어렸을 때 엄마에게 맞았던 게 기억나냐고 물었다. ‘당연히’ 생각난다고 했다. 왜 맞았는지도 생각나냐고 물었더니, “왜 맞았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엄마한테 맞았던 건 생각나. 엄청 아팠어.”라고 했다. 그 말을 하는 딸의 얼굴은 그 날의 아픔을 여전히 느끼고 있는 듯했다. 열아홉 살인 큰딸이 아마 네 살, 작은 딸이 두 살 때 쯤이었을 거다. 큰방에서 두 딸이 사이좋게 노는 소리를 듣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18개월 터울인 두 아이를 혼자서 온종일 보살피던 때여서 잠깐의 단잠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는데 뭔가 싸한 느낌에 잠이 깼다. 큰방에 있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거실로 나와 보니 싱크대 안에 있던 밀가루가 바닥에 쏟아져 ..
2018.05.08 -
여성이자 청소년으로서, 나는 폭력을 거부할 것이다.
청소년의 체벌거부선언문 여성이자 청소년으로서, 나는 폭력을 거부할 것이다. 나는 청소년이었을 때보다 어린이였을 때에 체벌을 더 많이 받았다. 지금보다 조금 더 작고 어릴 때, 집에 어른이 계시는데도 언니와 큰 소리로 싸웠다고 엄마에게 머리끄덩이를 잡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밟혔던 기억이 난다. 반면 청소년이 되고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부모는 대체로 신체에 직접 폭력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부모가 이젠 날 잘 때리지 않는다는 것에 묘한 안도감을, 그리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성장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나, 많이 컸구나!’라는 생각이 키와 몸무게를 쟀을 때나 간단한 수학문제들을 열심히 푼 흔적을 보았을 때보다, ‘맞을 것 같다고 직감한 상황에 맞지 않고 넘어갔을 때’ 강하게 느껴졌다. 이제 다..
2018.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