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12. 21:15ㆍ특별 연재/체벌거부선언
사범대 학생의 체벌거부선언문
― 예비교사로서 체벌을 거부한다
난 예비교사지만 학교에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학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당했던 체벌인데, 다른 학생들이 복도에서 시끄럽게 뛰어다닐때 갑자기 교사가 내 귀를 잡고 교무실로 끌고 갔던 사건이다. 너무 당황스럽고 귀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교무실 앞에 가서 귀를 놓자 난 아무것도 안했다고 북받쳐 말했고, 교사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돌아가보라고 했었다.
내 기억의 많은 교사들은 가해자다. 체벌을 금지한 초중등교육법에도 불구하고 신념이 있다는 듯이 꿋꿋이 학생들을 때리고 수고로운 사랑의 매를 자랑스러워하던 뿌리깊은 가해자들이었다. 학생들은 때리면 말을 듣는다는 것이 오랜세월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였고 그들의 교육철학이었다. 나는 그런 교사들이 싫었다. 교육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는 학교문화를 바꾸기위해 난 교사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폭력은 내게도 내면화되고 순환되고 있었다. 내겐 6살 어린 동생이 있다. 종종 동생과 장을 볼때면 동생이 딸기를 사달라고 조르는데 어느날은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귀찮게 구는 동생의 머리를 세게 때렸다. 동생은 눈시울이 붉어진채 나를 노려보았지만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엄마에게 가 울었고, 나는 그제서야 내가 무슨 짓을 한건지 깨달았다. 그건 폭력이었고,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학대였다.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의 교사처럼 당장에 사과할 수 없었다. 내가 실수하고 화풀이나 하는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는건 체벌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 교사도 같은 이유로 내게 사과할 수 없었을 거다. 아이를 쉽게 통제하고 지도하기 위해서는 그 폭력이 정당한 것이어야 했다. 아이보다는 교사의 입장이,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의 입장이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던 거다.
겁이 났다. 나도 만만한 사람 앞에서라면 이렇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고, 내게 상처를 준 교사들과 다를바 없는 예비 학교폭력 가해자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동생에게 사과하였고 더이상 동생을 때리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기 위해 주의했다. 그랬더니 동생은 왜 다른 오빠들처럼 자신을 때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친권자에 의한, 손위사람에 의한, 교사에 의한 폭력은 일상이고, 그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한 물음이었다.
아동에 대한 폭력이 정당화되고 교육이라고 칭송받기까지 하는 문화는 어디서 시작된걸까? 시작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 폭력문화가 재생산되고 순환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 선배에 의한 폭력, 나이 많은 형제에 의한 폭력, 그리고 나에 의한 폭력. 교육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우리 또한 답습중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내 담임교사는 폭력적으로 야자를 강요하고 반을 휘어잡으려 했었다. 난 그 교사에게 종종 문제제기를 하고 학생인권에 대해 말했었는데, 그 교사는 학창시절에 자신이 당했던 체벌경험을 말하며 변명하곤 했었다. 30년 전 자신은 군화에 머리를 짓밟히기도 하고 엉덩이가 터지도록 매를 맞기도 했는데, 그게 무척이나 수치스러웠단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건 교육을 위한 최소한의 폭력이니 사범대를 지망하는 나도 나중에 교사가 된다면 자신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 교사의 폭력은 충분히 반인권적이고, 학생들에게 수치심을 주는 것이었다. 야간자율학습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체벌을 가하고 때론 연대책임을 물려 반 학생 모두를 운동장에 집합하여 기합을 주는 것은 절대 최소한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교사는 최소한의 폭력이라고 말했다. 담임교사를 폭행한 30년 전의 교사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학대와 훈육의 기준을 교사가 정한다면, 세상에 자신이 학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교사는 없을것이다. 학생들을 통제하는데 성공한다는 결과 앞에 모든 폭력을 최소한으로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이제 이 폭력문화를 없애야 한다. 보호자나 교사가 아동청소년을 통제하고 처벌할 수 있다는 망상을 깨야 한다. 아동은 미성숙하고 어른은 성숙하다는 망상을, 폭력이 인간을 만든다는 거짓말을 깨버리자. 성숙한 어른이 아닌 미성숙한 동반자로서 함께 고민하고 성장하는 교육을 하자.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가 친권자로서, 교사로서, 연장자로서 아동과 맺는 권력관계를 성찰하고 폭력을 휘두를 권리가 없음을, 아동이 존엄한 한명의 인간임을 이야기하자.
체벌은 교육이 아니다. 폭력이다. 약한 사람에게만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고 학대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동청소년에게 행해지는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나는 오늘 체벌을 거부하려고 한다. 그리고 예비교사로서, 체벌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고 인권친화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생들과 연대할 것을 약속한다.
- 이루
아수나로 진주지부에서 활동하고 있고 교육학을 공부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