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14. 23:11ㆍ특별 연재/체벌거부선언
교사 체벌거부선언문
― 아직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체벌 문제를 없애기 위해, 나는 선언합니다
나는 체벌이 공기처럼 당연한 시대와 장소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 짧게는 하루 6시간, 길게는 15시간 동안 200일 남짓 출석해야만 했던 학교. 거기서 매일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단지 찰나의 순간에 이뤄지는 체벌 사건이 단 한 번이라도 일어나면, 나는 몇 주 동안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우울감에 시달려야 했다. 초등학교 때 담임교사가 축구공을 내 얼굴을 향해 차 뺨을 맞았던 일, 중학교 때 담임 교사가 내 등을 손바닥으로 세게 쳤던 일, 고등학교 때 담임 교사가 내 뺨을 세게 후려쳤던 일. 이런 체벌들은 신체적으로도 너무나 아팠지만 이로 인한 모멸감과 수치스러운 감정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어쩌다 보니 나는 덜컥 교사가 되어 있었다. 다행인 일인지 그 사이에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법이 많이 생겨났다. 내가 소속된 경기도에서는 2010년 학교 체벌 금지를 명시화 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여 시행 중에 있고, 2011년 교육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에서는 전국적으로 직접 체벌을 금지하고 있으며, 2015년 개정된 아동복지법에서는 보호자가 아동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심지어 우리 학교 교직원 회의에서는 교감선생님께서 체벌 금지는 법적으로 이야기가 끝난 것이므로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에게 우리 학교나 우리 지역에서 체벌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언젠가 체벌이 우리 반이나 나에게도 향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줄 수밖에 없다. 내가 학창시절 겪었던 심각한 우울감이 여전히 학생들을 짓누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청소년인권 단체에서는 이토록 체벌을 금지하는 법들이 겹겹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도 체벌 사건을 공론화하여 해결하고자 애쓰고 있다.
체벌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을 가진 나도 교사로서 체벌을 가한 순간이 있었다. 화재 대피 훈련 중 떠들던 학생의 등을 손바닥으로 때린 일이었다. 대피 훈련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와 내 잘못을 짚으며 체벌을 당한 학생과 그 모습을 본 모든 학급 학생들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무겁고 조용해진 교실 분위기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내 잘못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체벌을 금지하는 많은 법이 존재하고 있지만 여전히 체벌은 쉽게 일어나고, 가해자는 쉽게 처벌 받지 않는다. 여기에는 체벌에 경각심을 갖지 않고 그것을 쉬쉬하는 교사들의 책임도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모욕감을 주고, 공동체의 평화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드는 체벌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교사들의 선언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짧게든 길게든, 잘 쓴 글이든 아니든 체벌 금지 선언이 전국의 교사에게 들불처럼 퍼져 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할 학생들이 마음 놓고 학교를 다닐 수 있길 바라며 교사로서 모든 형태의 체벌을 거부할 것을 선언한다.
2018년 3월 2일, 광흠(경기도 초등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