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8. 21:55ㆍ특별 연재/체벌거부선언
부모의 체벌거부선언문
― ‘사랑의 매’는 훈육이 아닌 가정폭력이다
얼마 전 딸에게 어렸을 때 엄마에게 맞았던 게 기억나냐고 물었다. ‘당연히’ 생각난다고 했다. 왜 맞았는지도 생각나냐고 물었더니, “왜 맞았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엄마한테 맞았던 건 생각나. 엄청 아팠어.”라고 했다. 그 말을 하는 딸의 얼굴은 그 날의 아픔을 여전히 느끼고 있는 듯했다.
열아홉 살인 큰딸이 아마 네 살, 작은 딸이 두 살 때 쯤이었을 거다. 큰방에서 두 딸이 사이좋게 노는 소리를 듣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18개월 터울인 두 아이를 혼자서 온종일 보살피던 때여서 잠깐의 단잠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는데 뭔가 싸한 느낌에 잠이 깼다. 큰방에 있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거실로 나와 보니 싱크대 안에 있던 밀가루가 바닥에 쏟아져 있고 냉장고 문에 열린 채 깨진 달걀 서너 개가 그 위에 놓여져 있었다. 두 아이는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신나게 손으로 밀가루 무더기에 달걀을 버무리고 있었다. 불같이 화가 났다.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어질러 놓은 것도 화났지만 나의 휴식을 깨뜨려 버린 것에 대한 분노가 더 컸던 것 같다.
“남**! 남**! 이게 뭐하는 짓이야? 누가 이런 거 꺼내서 놀라고 했어? 응? 집이 이게 뭐야? 엄마가 자는데 그새를 못 참고! 엄마가 이거 어떻게 다 치우라고? 너네 둘! 엄마한테 맴매 맞아야겠다. 맴매 어딨어?”
밀가루 범벅인 채로 둘만의 놀이에 빠져있던 아이들은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더구나 ‘맴매’라는 말에 얼굴은 순식간에 공포로 질려버렸다. 나는 아이들을 화장실에 몰아넣고는 우악스럽게 옷을 벗겼다. 엄마의 짜증스럽고 거친 손놀림에 금세 벌거숭이가 된 아이들은 두 손을 내민 채 울고 있었다.
“남**! 남**! 너네 잘못했지? 밀가루, 달걀 꺼내서 이렇게 엉망으로 하면 돼? 안 돼? 몇 대 맞을래? 응?”
아이들은 두 손을 싹싹 빌기 시작했다.
“엄마! 잘못했어요. 다음부터 안 그럴게요. 맴매하지 마세요.”
아이들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두 아이의 손바닥을 회초리로 세게 내리쳤다. 한 대, 두 대, 세 대!
나는 아직도 두 딸의 표정이 기억난다. 제발 엄마가 자신들을 용서해서 회초리를 맞지 않기를 애원하던 눈동자를. 온몸을 움찔움찔하면서 고통을 참아내던 그 표정과 몸짓을. 15년이 지나도 아직까지 그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는 큰딸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아이 키우는 고단함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변명해 보고 싶지만 두 딸은 나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절대적 약자였다. 부모로서 아이가 잘못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로지 힘이 있는 내가 때리느냐 마느냐를 선택할 수 있고 결정할 수 있었다.
남편이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나를 때린다면 그것은 분명한 가정폭력이다. 그런데 부모인 내가 자녀를 때리는 것은 훈육이라고 생각했다. 내 안에서 자식은 맞아도 되는 존재라고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맞아도 되는 사람’이라니! 이 얼마나 부당하고 슬픈 일인가? 나는 아이들에게 ‘힘없는 친구를 때리면 안 된다’고, ‘폭력은 나쁜 것’이라고 수도 없이 말해 왔다. 그런데 정작 부모인 나는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권력관계에 의한 폭력의 정당성을 가정에서부터 학습하고 내면화하게끔 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미웠을까? 그때의 매질은 가르침도 교육도 아닌 나의 감정적 분풀이에 불과했다. 화가 나서 아이들을 때리긴 했지만 벌겋게 부은 손바닥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울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미안함과 나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아이들에 대한 폭력은 아이들뿐 아니라 나에게도 되돌릴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다. 십여 년 전 경남에서 학생인권조례 운동을 하면서부터 더 이상 체벌을 하지 않게 되었고 내가 했던 잘못들에 대해 사과를 했지만, 이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만은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싫고 부끄러워서.
자식을 키우는 일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고 어렵다. 나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한 존재로서 자식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매를 들면 매가 무서워서 그 순간은 복종하고 행동의 변화를 보이지만, 부모에 대한 더 큰 원망과 증오를 마음에 담아둘 것이다. 체벌을 그만두고부터는 더디고 어렵기는 하지만 자식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행동에 대한 이유를 내가 먼저 미루어 짐작하거나 결론내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의 말을 되도록 중간에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들으려고 노력한다. 잘못한 행동에 대해 돌아보고 성찰하는 힘이 그들 안에도 있으니 너무 안달하지 말고 믿으라고 나 자신에게 말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고 잔소리를 할 때도, 언성을 높일 때도 있지만 조심하고 고민하고 기다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 이 사실만은 분명히 안다.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을 때려서는 안 된다. 맞아도 되는 잘못은 없다.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사랑의 매는 없다. 어떤 이유로도 때리는 것은 폭력이고 학대이다.
- 이정화 (학부모, 어린이책시민연대 창원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