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인권친화적인 콘텐츠 발굴하기 ⑤ 빈둥의 『약속의 네버랜드』 리뷰 - 당신이 생각하는 어린이는 없다

2019. 6. 14. 23:02특별 연재/청소년인권친화적인 콘텐츠 발굴하기


청소년인권친화적인 콘텐츠 발굴하기 ⑤ 

빈둥의 약속의 네버랜드 리뷰 - 당신이 생각하는 어린이는 없다



만화 『약속의 네버랜드』 공식 일러스트




※ 이 글은 만화 약속의 네버랜드(約束のネバーラン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네버랜드는 원작의 시라이 카이우(白井カイウ), 

그림의 데미즈 포스카(出水ぽすか)가 그린 서스펜스스릴러 만화로

2016년 슈에샤(集英社)주간소년점프(週刊少年ジャンプ)에서 연재를 시작했다.





‘탈옥’을 결행하고 ‘해방’을 이야기하는 어린이들


  이야기는 작중 2045년 10월, 고아원 그레이스 필드 하우스(GF하우스)에 사는 38명의 어린이가 보육자인 맘 이자벨라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엠마와 노먼이 코니가 입양을 가면서 잊고 간 물건을 전해주기 위해 밖으로 통하는 문에 도착해서 코니의 시체와 식인귀를 목격하면서 전개된다. 엠마와 노먼은 ‘엄마’처럼 따르던 이자벨라가 사육감으로서 자신들을 귀신의 식량으로 기르고 있으며, 하우스는 귀신에게 제공할 식용아를 사육하는 농원이라는 진실을 맞닥뜨리고, 귀신에게 먹힐 운명을 거부하며 탈옥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이들은 정보를 수집하면서 하우스가 감옥이며, 귀신 세계의 규율권력이 식용아라는 상품을 훈육하기 위해 농원의 일상 속에 숨겨놓은 장치(나사 구멍이 모두 메워진 창문,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식용아, 하얀 옷, 규칙적인 생활 등)들을 간파한다. 그리고 레이, 길다, 돈 등 천천히 다른 어린이들을 탈옥의 주체로 끌어들이고, 자신들의 조건과 상황, 위치를 파악하면서 사육감 이자벨라, 시스터(보조)크로네와 전략적 두뇌 싸움을 진행해나간다. 이후 엠마 일행은 이자벨라의 빈틈을 노려, 출하 기간이 약 2년 남은 4살 이하의 어린이들은 나중에 데려오기로 약속하고, 5살 이상 15명의 어린이의 훈련을 비롯한 모든 준비를 이루어내고 탈출한다.


  엠마 일행의 하우스로부터의 탈출은 그저 집을 나가는 개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며, 세계를 바꾸기 위한, 저항의식이 체현된 어린이들의 집단행동이다. 그렇기에 귀신이 허락한, 인형의 집에서 자유롭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가며 자립을 구성하는, 주체적인 몸의 경험이라고 파악할 수 있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탈옥은, 초반 배경이 되는 GF하우스에서의 일차적 탈옥만의 의미로 제한하지 않고, 식용아들의 ‘해방’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간주하고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엠마 일행은 GF하우스에서의 탈옥 이후, 양산 농원들과 식용아들의 현실을 알게 되면서 모든 농원의 식용아 ‘해방’을 논한다. 해방을 위한 집단행동은 이상론으로 좌절되지 않는다. 엠마와 레이는 B06-32에서 만난 유고와 A08-63으로 가서, 그곳에 생존해 있는 식용아들과 함께, 귀신 바이욘 경의 사설 정원이자 귀신들의 비밀 사냥터를 몰락시키며 귀신 세계를 바꾸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또한, 식용아들은 피지배 집단으로서 구성 간 상호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서로에게 가족이 됨으로써 새로운 가족을 주체적으로 구성하고, 식용아 현실의 근원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귀신과 약속을 다시 맺으려 나선다. 지배체제에 저항하기 위해 자립을 이으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어린이들은,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 과정의 일부도, 지켜줘야 할 대상도, 단순히 모험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존재도 아니다. 작품은 구조적 불평등에, 권리를 주장하고 행사하는 어린이를, 인격체로 등장시켰다. 


어린이와 애정의 사회학


  일반적으로 친권자나 보호자, 교육·보육자는 어린이에게 애정을 느끼고, 애정을 담은 행동을 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그렇기에 독자 중에서는 이자벨라가 귀신의 먹이로 어린이들을 사육하면서 웃는 모습으로 어린이들을 대하는 것이 보다 끔찍하다고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어린이들을 대하는 행동에 애정이 담겨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편 이자벨라는 엠마와 노먼, 레이에게 저항을 포기하라며, “너희가 좋으니까,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해. 나는 너희를 괴롭히고 싶지 않거든. 행복한 일생 아니니? 포근한 집과 맛있는 밥, 아낌없는 애정 속에서 굶주림도 추위도 진실도 모르는 채 뿌듯한 마음으로 죽어가는 것. 그게 어째서 불행하다는 거니?”라고 말한다. 자신의 행위에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정서적 의미를 부여하며 정당화한 것이다. 식용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가지만, 사랑하기 때문이라니. 어린이를 때리는 것이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형태로 정당화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것들이 어린이를 향한 애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더라도, 무엇이 진정한 애정으로부터 나온 행동인지 분명히 이야기할 수는 없다. 애정의 기준은 조작되지 않고 모호한 채로 사용되며, 개개인에 따라 애정이 담긴 행동은 다르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건 어른이 어린이에게 주는 애정은 어린이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개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의 주체성과 의견을 간과한다. 애니메이션에서 엠마는 이자벨라에게 “거짓 미소 따윈 필요없어. 설령 괴롭다 하더라도 나는 자유롭게 살 거야. 뭐가 행복한지는 스스로 정할 거야”라고 말함으로써 이 지점을 가리킨다.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삶을 통제하는 것이 어린이를 주체적인 존재로 존중받지 못하게 하며, 어른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약속의 네버랜드』는 엠마 일행과 유고를 통해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상호의존적 관계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상호성 관계가 항상 평등하지만은 않으며, 돌봄의 관계에는 더 많이 제공하는 사람과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존재하지만, 그동안 돌봄이 필요한 대상으로 간주하여 왔던 어린이가 어른과 서로 기댈 수 있는 위치로 배치된다는 것은 기존의 위계질서를 허문다. 물론, 처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유고는 엠마 일행을 싫어해 B06-32에서 쫓아내려고 했으며, A08-63으로 가는 길에 엠마를 죽이려고도 하는데 엠마는 동료를 잃었던 유고의 아픔을 알고서 유고에게 도와준다고 말한다. “‘도와준다’고? 조그만 게! 네가 뭐라고! 뭐나 된 줄 알고…! 허튼소리 집어치워, 더듬이!”라고 유고는 답한다. 어린 존재는 의존할 대상이 아니며, 그들에게 의존하는 것이 수치스러운 듯 말이다. 하지만 이내 유고는 함께 살아가자며 동료들의 뜻을 이어받자는 엠마의 말에 설득당하고, 이들은 귀신의 사냥터를 몰락시키는 과정을 함께 하는 등 자연스럽게 감정을 주고받으며 동료의 관계로 발전한다. 중간중간 어린이는 물러나 있으라는 식의 유고의 말에서 어린이에 대한 보호주의적 시각을 찾아볼 수 있지만, 유고와 엠마 일행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가치와 상호 의존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일반적 수직적 관계를 피한다. 이는 피지배집단 구성원들 간의 아픔이 공유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가 어른을 동료로 만들어내는 관계의 구성 방식은 주목할 만하다.

 


‘소년’만의 이야기가 아닌 ‘소년만화’



  『약속의 네버랜드』는 ‘소년만화’인데 여성 어린이가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화제가 되곤 했다. 소년만화 잡지에 게재되고 있는 작품들은, 게재되는 잡지의 성격에 따라 주된 특징이 분류되곤 하지만, 대체로 남성 주인공과 집단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여성을 주변으로만 머물게 하고, 성적으로는 거두어들이며 남성 중심적 패턴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원작의 시라이 카이우는 성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음을 밝힌 바 있는데, 그렇기에 소년만화에 확립된 일상적 지식을 벗어난 여성 어린이에 대한 표현들은 주목할 만하다. 젠더의 재생산이 단순한 반복에만 머무르지 않고 변화를 하고 있다는 측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소년만화의 역사 속에서 『약속의 네버랜드』가 다른 측면을 부인한다고 해서 젠더 규범의 상징적 코드를 완전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GF하우스에서 여성 캐릭터들만이 치마를 입는 모습, 여성 어린이만이 사육감이 될 수 있다는 설정, 여성 캐릭터인 바이올렛의 특징에 “남자 같은 말투를 쓴다”라고 한 것 등은 성별에 대한 특성이 분류되어온, 의미 구조의 틀로 해석할 수 있다. 특정 성별과 연령대에 고정관념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젠더와 나이 체제의 재생산에는 순응도 일탈도 있기 때문이다. 『약속의 네버랜드』의 강점은 성별을 강조하지 않고, 주변화되어 온 특성들에 대한 가치의 저평가를 뒤집었다는 점이다. 여성 어린이는 ‘소녀의 아름다움’으로 표상되지 않고 귀신 세계에 대항하는 동료로 그려진다. 또한,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어온 여성 캐릭터들의 다정한 성격과 세심한 모습들은 엠마와 길다 등을 통해 ‘강함’의 요소로 드러난다. 『약속의 네버랜드』 속 어린 여성은 자신을 대상화하지 않고, 전체 속에서 주변적 존재로 다뤄지지 않는다. 이러한 장치들이 어린이는 성적인 자극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현실의 규범 속에서, 어린이들을 성적인 존재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속의 네버랜드』가 소년만화 속에서 ‘소녀’의 규정된 이미지를 허물고, 다양한 여성 어린이들의 모습을 인격체로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읽힐 필요가 있다.


- 빈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