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인권친화적인 콘텐츠 발굴하기 ③ 여름의 <우리들> 리뷰 - '우리 아이들'이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

2019. 5. 25. 15:36특별 연재/청소년인권친화적인 콘텐츠 발굴하기

청소년인권친화적인 콘텐츠 발굴하기 


여름의 <우리들> 리뷰 - '우리 아이들'이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


영화 <우리들> 스틸 이미지



※영화 <우리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애들이 일 있을 게 뭐가 있어. 학교 가고 공부하고 친구들하고 놀고 그럼 되는 거지 뭐.'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주인공 ‘선’을 걱정하는 엄마의 말에 아빠가 답한 말이다. 선의 아빠는 평소와 다른 선의 모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선에게는 사실 큰 고민이 있다. 선에게 일어난 사건들은, 그저 ‘친구 관계’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많이 복잡하고 미묘한 이야기이다.



2.


 학교에서 늘 혼자 지내던 주인공 ‘선’은 여름 방학식 날 전학 온 ‘지아’와 친구가 된다. 방학 동안 선과 지아는 함께 봉숭아물을 들이고 함께 자고 비밀이야기를 나누며 단짝이 된다. 하지만 지아가 영어학원에 다니고 개학을 하는 환경의 변화가 생기며 둘의 평화로운 관계에 흔들림이 생기기 시작한다. 지아는 선을 따돌리던 ‘보라’와 친해지며 선과는 미묘한 어색함들이 생긴다.


 대부분의 영화가 그러하듯 ‘우리들’도 인물 간의 갈등이 점점 심화된다. 하지만 다른 영화들과는 다르게, 사건 자체를 자극적으로 몰고 가지 않고 인물들의 상황과 감정선을 점점 섬세하게 비추는 관점으로 사건을 전개한다. 따라서 담담하지만 현실적이고, 모두에게 한 번씩은 있었을 법한 경험을 세세한 감정선으로 그리기에 많은 사람들이 몰입하여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3.


 ‘아이들’의 나이로 살던 때, 나는 늘 고민이 많았다.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았지만 용돈을 받지 않아 문방구에서 가장 싼 노트를 사서 갔다. 친구는 다른 친구들의 선물과 비교하며 ‘정말 이게 선물이냐’고 웃었다. 부끄러웠고 상처받았지만, 텔레비전 속 멋진 장면들처럼 시원하게 친구에게 따질 수 없었다. 어쨌건 친구는 나를 초대해주었고, 나를 놀이에 끼워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참아야 하는 것이 많았고, 그런 순간들은 나를 작아지게 만들곤 했다.


 반에서 나는 늘 혼자 있는 어린이였다. 뉴스나 영화와 같은 매체에 나오는 것처럼 언어적 신체적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노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늘 바깥에 존재하는 어린이였다.


 무리에 있는 친구들이 점점 권력을 가지는 모습을 보며 교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도 무리에 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리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나를 보며 스스로를 못난 사람이라고 탓했다.


 무리에 속하는 과정은 어려웠다. 반에서 힘을 가진 무리가 아닌 ‘평범한’ 친구들로 이루어진 무리였음에도,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어려웠다. 무리에서는 늘 상대적으로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고, 상대적으로 강한 친구들을 더 좋아하며 약한 친구는 놀림거리와 웃음거리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하지만 학교에서 학교폭력예방 교육을 받을 때 보는 자료나 방송 매체에서 보는 모습과는 다르게, 친구들의 놀림과 괴롭힘은 “폭력”이라고 이름 짓기에는 왜인지 미묘하게 애매한 것들이어서 늘 속으로만 상처를 받았다. 오히려 내가 매력이 없는 사람이어서 그런 것이라며 나를 탓하곤 했다.


 영화 ‘우리들’의 선과 지아의 이야기처럼, 그리고 내가 어린이 시절 겪었던 일처럼 학교에서 일어나는 관계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친하던 친구와 미묘한 관계의 변화로 멀어지고, 공부를 잘하거나 예쁜 친구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지만 뚜렷한 권력이 생기고, 팀을 정할 때 늘 남는 사람이 몇 명 생기는 것. 하지만 이는 정말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가 뒤섞여 있는 것이라 당사자들에게는 늘 어렵고 힘든 일이다.


 ‘우리’라는 관계를 평탄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이유를 단순하게 특정 개인을 ‘악마화’하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무리를 만들어야만 하고, 힘이 센 친구와 친하게 지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학교라는 공간의 구조적인 이유들도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 ‘우리들’에서 비추는 관계의 이야기는 특정한 ‘못된’ 사람과 특정한 ‘외톨이’의 ‘문제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4.


‘말을 해야 알지.’


선의 엄마와 교사가 선과 지아에게 한 말이다. 하지만 말을 한다고 해서 알까, 어린이들의 생활을 단지 고민 없이 밝게 지내는 ‘아이들’로 보고 ‘우리들’의 현실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화 ‘우리들’은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어린이 시점에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친구가 심부름을 시키고, 때리고, 사물함에 낙서를 해야만 문제가 되고 고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봉숭아물을 함께 들였던 친구가 다른 친구와 매니큐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게는 없는 휴대폰이 친구들에겐 있는 것이 상처가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 여름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