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적인 분성여고를 원하는 졸업생 50인 선언 - 대자보 전문

2019. 3. 29. 00:03기타

인권적인 분성여고를 원하는 졸업생 50인 선언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곧 해방이네"

"이제 자유니까 좋겠네"

 

졸업이 다가오면서 귀가 닳도록 듣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말처럼 졸업이 다가와서 마냥 기분이 좋을까요? 그저 졸업이 기다려질까요? 우리는 졸업을 하면 자유가 아니면 좋겠습니다. 졸업을 하면 해방이 아니면 좋겠습니다. 졸업을 하기 전에도 자유이고, 해방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학생으로 살기가 힘들어서, 그렇게 꾸역꾸역 견디다 졸업이 기다려지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졸업이 해방이 아니라, 졸업 전부터 해방된 삶을 살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배웠더라면, 학교는 조금 더 남아 있고 싶은 곳이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변화를 경험했고 희망을 학습했습니다.

 

▶ 2017년 8월, 학생생활평점제가 폐지되었습니다.

생활평점제는 BP(상점), RP(벌점), GP(벌점 상쇄)의 점수를 부여하는 기준을 '교사 지시 불이행'등 오롯이 교사의 주관에 맡겼습니다. 그렇게 쌓인 평점을 이용해 학급회/학생회 임원 출마 불가, 정독실 사용 금지, 벌 청소, 상장 박탈 등 우리의 일상을 부당하게 제한하여 순종적인 학생을 만들기에 참으로 편리한 통제 수단이었습니다.

 

이러한 생활평점제는 결과적으로 교육감의 권고 아래 간단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하지만 생활평점제를 교육감이 없애준 것인가요? 아니요. 우리가 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생활규정 제·개정 토론회에서 "우리의 인격을 수치화하지 말라"라고 누가 외쳤습니까? 교실 게시판에서 담임교사가 붙인 상벌점 내역을 보고 "우리, 그냥 몇 점짜리 인간이 된 것 같다"고 누가 속삭이며 분노했나요? 나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벌점을 주고 가는 교사의 등에 대고 "억울하다"고 누가 저항의 눈빛을 보냈습니까? 우리가 했습니다.

 

▶ 2018년 8월, 끝내 교문지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난 뒤 학교에는 <2학기 생활교육 방안> 공지가 붙었습니다. 사복/노란머리/빨간머리/파란머리/피어싱의 단속과 더불어 교문지도를 재개하겠다는 방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학생들이 전부 비슷한 복장, 비슷한 얼굴, 비슷한 색의 머리카락을 하도록 교육함으로써 마침내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며 말입니다.

 

현행 규제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교사들과 함께 학생들은 폭발하듯 게시판에 자신의 의견을 써서 붙였습니다. 교문지도를 재개하기로 했던 월요일 아침, 교사들은 교문에 나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속의 대상이었던 학생들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우리를 봐 주신 걸까요? 아니요. 통제를 하면 통제를 받을 줄 알았는데, 통제를 받지 않겠다고 하니 멈칫한 것입니다. 그날 교문지도를 당하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우리가 얻어낸 결과입니다. 생기부를 걱정하면서도 "복장을 단속하는 교사에게 고개 숙이는 것이 비참하다"고 누가 우리의 처지를 말했습니까? 게시판의 글을 읽다가 받는 낙인의 눈초리에도 우리의 현장을 지킨 수많은 이들이 누구인가요? 우리입니다. 우리가 했습니다.

 

우리는 학교를 다니면서 우리의 힘으로 일구어낸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목소리를 내면 바뀔 수 있다는 믿음 또한 학습했습니다.

 

 

인권적인 학교를 위한 길, 어깨 걸고 함께 나아가요.

 

우리가 걷는 이 길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걸을 수 있는 길이 있고 함께 걸을 사람이 있으면 얼마든지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걷는 사람이 있으면 길이 없어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교가 정말로 멋진 길을 열어나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학교를 졸업하지만 학교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늘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돕겠습니다.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를 옭아매었던 교육 구조와 사회 문제에 대해 앞으로도 끊임없이 목소리 낼 것임을 다짐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권리는 딱 우리가 저항한 만큼만 찾을 수 있습니다.

 

 

김해분성여자고등학교 13회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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