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15. 21:56ㆍ칼럼-청소년의 눈으로
체벌은 학대다! 교사에게도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직업을 잘 밝히지 않는다. 내 직업을 처음 밝혔을 때 돌아오는 가장 흔한 반응은 그 사람이 초등학교 시절 교사로부터 받았던 여러 학대 경험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내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쌤 이름도 이희진이었는데.”
“아, 그러셨어요?”
“진짜 많이 맞았는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이 당한 폭행에 대해 말하는 상대방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 사람은 나한테 무슨 말을 듣고 싶어 이러는 거지? 내게 화를 내는 건가? 고민하던 나는 결국 미안하다고 했다.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였다. 달리 뭐라고 하겠는가. 내가 그를 때린 이희진이 아니더라도 수없는 내 경험이 말해주듯 내 직업의 가장 보편적인 상징은 체벌 즉 폭력인 것을.
그래서 체벌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언제나 어렵고 힘들다. 정말로 쉽지 않다. 내 삶의 끔직한 부분을 들여다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 중 누구도 그 앞에서 자유롭지 않고 떳떳하기 힘든 두 글자. 체벌.
체벌은 교사를 학대한다
한국 사회의 체벌 문화는 유서 깊다. 반면 체벌에 대한 논의는 빈약하다. 교사들도, 교사가 아닌 사람들도 체벌에 대해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 또는 ‘교육적 효과가 있으니 허용되어야 한다’, 기껏 해 봤자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라고 말하는 정도가 논의의 전부이다. 무엇보다 체벌이 교사의 노동환경이나 정신건강에 끼치는 효과 같은 건 단 한 번도 연구된 적이 없다. 신기하지 않나? 남성인 교사가 몇 퍼센트일 때, 여성인 교사가 몇 퍼센트일 때 더 교육효과가 높은지, 외모가 사회적으로 더 뛰어난 사람이 학습 효과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인지, 업무곤란도가 교사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배구대회가 교사에게 주는 스트레스와 긍정적 효과는 어느 정도인지 등 교사가 어떤 변수로 인해 어떻게 변화하는지는 별별 이상한 구석에서까지 연구되곤 한다. 그런데 교사가 체벌을 오랜 기간 행했을 때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연구는 찾아볼 수 없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말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뭐가 다를까. 사람이 사람을 때리거나 고통스럽게 하는 일을 하는데 그 사람이 꾸준히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합리적 의심’이다.
근데 관심이 없다. 교사들도 관심이 없긴 마찬가지다. 교사들조차 체벌에 대해 사람-교사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체벌은 그 고통을 당하는 이도 사람이지만 행하는 이도 결국 사람이다. 하지만 체벌 논의에서 교사라는 ‘사람’은 소외되어 있다.
체벌에 교육적 효과가 있으면 왜 교사가 있어야 하나?
체벌의 교육적 효과는 제법 널리 인정된다. 하지만 체벌이 교육적 수단이라고 얘기될 때의 그 ‘교육적 효과’는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때리거나 벌을 명령하는 교사가 만들어내는 교육적 효과일까 아니면 고통이 만들어내는 효과일까? 답은 단연 고통이다. 부적 강화라느니 행동주의 심리학이라느니 반복학습이라느니 온갖 이론이 동원되지만, 결국 모두 고통을 느끼면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다. 즉 교육적 효과는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지 교사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다. 만약 체벌에 교육적 효과가 있다면 굳이 벌을 교사가 줄 필요는 없다. 컴퓨터에서 ‘3분 동안 의자를 드시오’라는 문구가 뜨건, 제비뽑기 통에서 뽑은 종이에 ‘투명의자 10분’이라는 말이 적혀 있든 동일한 효과가 있을 테니 말이다.
체벌은 교사의 일이 아니다
체벌에 대한 쟁점은 앞서 말했듯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첫 번째, 체벌은 폭력인가? Yes.
이제 이 정도는 인정하다. 체벌은 그냥 폭력이다. 이건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그냥 낱말의 뜻이다.
두 번째, 체벌은 효과가 있다? 답은 상관없다. 교사에게는.
영업직 노동자는 항상 웃어야 해서 눈주름이 빨리 지고, 교사는 늘 인상을 찌푸리고 있어서 팔자주름이 깊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왜 그러고 살아야 하나? 나는 최소한 하루의 ⅓, 길게는 내 삶의 절반을 머무르는 공간에서 불행하고 억압받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지 않다. 행복하고 안전하게 노동하고 싶은 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소망이자 기본적인 권리다.
세 번째, 체벌이 없어지면 교실이 무너지지 않을까? No
일단 무슨 일이 일어난들 교실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건 정말 교실을 교사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말이다. 누구 말마따나 ‘학생들이 난리가 난다’한들 교실 붕괴는 일어나지 않는다. 무너지는 것은 교사의 리더십뿐이다. 교사가 없으면 수업이 안 되거나 학생들이 배우는 게 없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은 배움이라는 것에 대한 무지에 불과하다. 그럼 왜 모둠별 프로젝트를 하고 과제를 내는가? 교사 없는 수업, 교사 없는 배움은 언제나 존재한다. 교사라는 리더가 있으면 방향을 제시해 주니 학생들이 좀 덜 헤맬 수도 있을 테지만, 그 리더가 폭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압박한다면 봉기하고 리더를 몰아내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학대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만약 체벌을 금지하는 것이 자신의 손발을 묶는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빨리 상담을 받으라고 하고 싶다. 기댈 것이 폭력밖에 없다면 진심으로 그 사람의 정신건강이 걱정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걱정되는 상태의 교사를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학생을 체벌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이성을 잃은 교사의 모습, 하루 종일 학생에게 ‘너 때문에 못살겠다’며 증오 어린 눈빛을 보내는 교사... 다들 망가진 사람들이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고 싶다. 때문에 안전한 일터를 원한다.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과 대화하고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보람있고, 내가 받는 급여에 대한 돈값을 하는 일이다. 거기에 내 영혼을 어둠에 물들게 하고 폭력적인 상황에 적극적으로 노출되도록 하는 일이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폭력을 스스로의 직업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학대다.
때문에 나는 바란다. 체벌이라는 폭력으로부터 교사가 벗어날 수 있기를.
- 이희진(초등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