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17. 22:01ㆍ칼럼-청소년의 눈으로
‘교육적 체벌’은 어불성설이다
“지름 1.5cm, 길이 60cm 이하의 나무 사용, 체벌 장소는 다른 학생이 없고 생활지도부장이나 교감 등 제3자가 입회하에 횟수는 초등학생은 5대, 중고등학생은 10대 이내. 체벌부위는 남학생은 둔부(엉덩이)만, 여학생은 대퇴부(허벅지)로 제한…” 2002년에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 체벌 방침’의 내용이다.
교육부가 제시한 체벌 방침은 “적당한 이유가 있고, 적당한 절차를 거쳐, 적당한 고통을 주는 체벌이라면 그것은 정당한 처벌이다.”라는 인식을 전제한다. 물론, 해당 방침은 현재 효력이 없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이유 없이 우발적이고 감정적으로 행해지는 체벌만이 문제이며, 교육적인 체벌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청소년의 행동이나 생각을 교정하거나 훈육할 분명한 목적과 적합한 절차를 가지고 행하는 ‘교육적 체벌’이 우발적이고 감정적인 ‘우발적 체벌’보다 정당하거나 덜 나쁘다는 생각은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관념이다.
사법부도 이들과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사법부는 체벌 사건이 생길 때마다 ‘법감정’이나 ‘사회상규’ 따위를 언급하며 교육적 체벌을 따로 규정하여 옹호했다. 아동학대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아동학대 처벌 특례법이 만들어지고 시행된 지 4년이 지났다. 하지만 작년에는 김포외고에서 부러진 각목으로 학생들을 위협하고 대걸레로 폭행한 교사를 검사가 기소하지 않은 사건이 있었고, 올해는 제주에서 친권자가 딸이 문신하고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로 폭행하였으나 폭행에 대해 1심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이는 사법부가 아동학대 처벌 특례법의 입법취지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체벌을 옹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육적 체벌을 구분 짓고 옹호하는 관념은 교육과 법, 국가의 이름으로 재현되고 있다.
잘못된 체벌과 옳은 체벌을 나눌 수 있다는 환상
체벌은 어떤 형태나 이유, 방식, 정도로 이루어지든 본질적으로 나쁘다. 그 어떤 이유도 신체적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으며, 체벌이 어린이·청소년이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라는 본질을 지울 수 없다. 핵심은 맞을 짓을 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때릴 수 있고 누가 맞아도 되는 자인가’에 있다. 모든 체벌은 위계적이고 권력에 기반한 폭력이다.
우발적이고 비도덕적인 체벌과 정당화될 수 있는 교육적 체벌을 구분 짓는 것은 가해자의 관점이다. “맞을 만해서 때렸는가”, “맞아야 할 만큼 때렸는가”는 가해자의 언어이지, 피해자의 언어가 아니다. 체벌을 구분짓고 옹호하는 국가와 사람들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폭력을 판단할 때는 그것이 어떤 형태, 이유, 방식, 정도로 이루어졌는지가 아니라, 피해자가 그로인해 어떤 피해를 입었고, 어떤 고통이나 기분을 느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교육적 체벌’이란 관념은 가해자와 위계폭력에 대한 동의이자 적극적인 옹호다.
우발적인 체벌과 교육적인 체벌은 다르며, 후자는 정당하고 도덕적으로 옳다는 얄팍한 믿음은 너무나 허술하다. 당연하게도 우발적인 체벌과 교육적인 체벌은 기계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체벌의 종류를 기계적으로 나눌 수 있다는 믿음은, 2002년 교육부 ‘학교 체벌 방침’처럼 터무니없는 형태로 드러난다. 이러한 ‘환상’은 터무니없음을 넘어, 가해자의 입장에 서서 폭력을 바라보며, 위계폭력을 옹호하고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해롭다.
제도화된 폭력의 해악
어린이·청소년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기본적으로 나쁘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 중에서도, 정도가 규격화되고 제도화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이루어지는 체벌은 그래도 덜 나쁘지 않을까 여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정도가 규격화되고 제도화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이루어지는, 소위 ‘교육적 체벌’로 인식되는 폭력은 덜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사유에 따라 똑같은 기준으로 공평하게 이루어지는 계획적인 체벌, 감정을 철저하게 숨기고 이루어지는 체벌은 그렇지 않은 체벌보다는 조금이라도 정당할까? 그렇지 않다.
형사재판에는 법관이 형을 감경할지, 가중할지 결정할 때 참고하는 ‘양형기준’이라는 참고자료가 있고, 대법원 산하의 ‘양형위원회’는 주요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폭력이 이루어진 양상이나 맥락에 따라 그 잘못의 정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양형위원회의 폭행범죄 양형기준에 따르면, 감정이 복받쳐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상황은 감경요소가 된다. 판단력이 흐려져 심신이 미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양형기준에 비추어 볼 때, 뚜렷한 목적과 절차를 가지고 행하는 폭행은 그렇지 않은 우발적이고 감정적인 폭행보다 더 큰 잘못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이성적인 상태에서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저지른 폭력은 그렇지 않은 폭력보다 훨씬 지탄받아 마땅하다. 체벌도 마찬가지다.
소위 교육적 체벌로 인식되는 형태의 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는 대부분 상습범이다. 그들은 체벌 이후에도 반성하지 못하고 자신의 체벌이 교육적이라 믿으며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한다. 일상적으로 이러한 제도화된 체벌을 당하는 청소년들은 마치 정당한 벌처럼 보이는 폭력에 굴복한다. 체벌은 청소년이 저항할 힘을 빼앗고 그들을 수월하게 통제한다. 이런 형태의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는 문제제기를 하기 힘들뿐더러,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2차 피해에 노출되기 훨씬 쉽다.
규격화되고 제도화된, 감정을 숨기는 폭력은 덜 나쁘지 않다. 가해자가 반성하기 힘들고, 청소년의 힘을 빼앗으며, 문제제기하는 피해자를 2차 피해에 노출시킬 가능성이 더 큰 형태의 폭력일 뿐이다. ‘옳은 폭력’으로 구분지어진 종류의 체벌이 만드는 사회적 해악은 심각하다. 하지만 청소년은 잘못하면 맞아도 되고, 폭력이나, 모욕적인 상황을 겪어도 된다는 인식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그 해악을 알아차리기조차 쉽지 않다. 알아차리기 힘든 해악은 맞서 싸우기도 힘들다. 어쩌면 이것이 소위 ‘교육적 체벌‘이라고 불리는 폭력이 가지는 가장 큰 위험이자 잘못일 것이다.
- 익명의 독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