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29. 00:21ㆍ칼럼-청소년의 눈으로
[청소년의 눈으로] 휴식을 은행적금 들 순 없는 거잖아요
어릴 때부터 숱하게 들어왔던 말 하나,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 이 말을 해석하자면, 청소년은 우선 (대학 가기 위해) 공부를 하고 봐야 하니 나머지 취미생활이나 휴식은 금지, 들어가서 공부해, 란 뜻이다. "이미 학교에서 했는데요"라고 하면, "지금 아니면 언제 해. 지금 바짝 하고 대학 가서 쉬어"하는 말을 듣곤 했다. 난 그냥 학교 잘 다니고 숙제 열심히 하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과 공부란 시시포스가 매일매일 들어 올려야 하는 바위와 같은 것인가 하는 압박감이 들었다.
그걸 본격적으로 체감한 건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였다. 중학교에서는 매를 맞고 교사들이 가끔 피시방을 드나들며 학생들을 단속하기도 하는 등 더욱 공부에 대한 압박을 직접 받았다. 또 나도 스스로 뭔가 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중학교부터는 시험을 봐서 '본분'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 내신 수치로 환산되고 등수가 갈리니까, 그런 부담을 받았던 것이다. 시험기간에는 독서실에서 종일 공부를 했고 시험기간이 아니더라도 왠지 모를 압박감과 눈치에 교과서라도 보는 척을 했었다.
지금 나는 고2다. 막연했던 압박감은 닥쳐온 대학 입시로 구체화됐다. 이전에는 "공부? 음, 해야지…"하며 두루뭉술한 부담감을 느꼈다면, 지금은 수능 앞에 얼마 안 남은 시간이 절박하다. 딱히 학문에 뜻이 없어 대학에 갈 이유가 없는 친구들도 초조함에 펜을 잡는다. 이렇든 저렇든 돌아오는 건 '이정도만 공부해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고, 발견하는 건 끊임없이 온갖 강요와 부담을 받는 통에 정작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린 나다. 자신을 되짚고 깊은 고민과 경험을 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을 산다
고등학생 77%가 수면부족으로 피로를 호소한다고 한다. 청소년의 여가 생활이 잠깐 짬만 내 즐길 수 있는 활동들로 획일화되었다는 통계도 봤다. 막연한 미래를 위해 우선 공부만을 강요하는 상황에선 당연한 결과다. 사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이런저런 압박으로 불안하고, 바쁘고, 잠도 잘 못 자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그럼에도 '잠깐만 고생하는 건데…', '대학 가서 맘껏 놀고 쉬어'라며 대충 둘러대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만다. 청소년을 성인이 되기 전의 준비단계따위로 취급하니까, 청소년이 살아가는 '오늘', '지금'은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은 오늘을 산다. 미래를 위해 지금만 고생하라는 주장은 청소년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앞날을 상상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침묵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데 원동력이 되어주고 즐겁게 해주는 여가·휴식은 뒤로 미룰 수 없다. 인생이 무슨 적금통장도 아니고, 휴식을 적금 든대도 이자 같은 건 없다. 지나가 버린 오늘은 그걸로 끝이다. '미래'를 위한 숱한 강요와 압박들… 누구를 위한 걸까. 분명 지금 바로를 사는 청소년을 위한 건 아님은 분명하다. 지금 바로의 청소년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 미래의 휴식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청소년이 오늘을 살 수 있게, 휴식할 권리가 필요한 이유다.
[글 : 준영(고등학생, 아수나로 활동회원,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