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5. 04:03ㆍ극한직업청소년
극한직업 청소년
:: 우울한 현실에 동조하는 학교
인문계고 3학년 문과생인 나에게 진학과 진로에 대한 고민은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게 한다.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는 일찍부터 역사라는 진로를 확실하게 정하고 역사 과목에 대한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지만, 수시 원서 접수를 앞둔 상황에서 내신과 수능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8년 동안 꿈꾸어왔던 목표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그러면서 급하게 다른 대안을 찾아보느라 힘이 많이 들었다.
그런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아수나로 활동을 하며 대학평준화와 입시 경쟁 폐지를 외쳤던 내가 정작 현실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유명한 대학교에 들어가고자 강제 야간자율학습과 각종 보충수업, 강제 토요/공휴일 자습, 사교육(입시학원)까지 받고, 모의고사 시험지를 매기며 일희일비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자각할 때면 자괴감이 든다.
교사들이 입학만 하면 모든 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했던 대학도 현재는 취업 앞에서는 그저 스펙으로 전락해서, 입학도 하기 전에 취업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 때문에 부모님과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감정 소모만 하게 되어 아예 논의 자체를 꺼리게 되었다.
사회적으로도 이러한 문제들은 해묵은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누군가는 "대학이 꼭 필요한 존재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그 주장들에 대해서 나 역시 대체로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이공계 학생들처럼 기술도, 실업계 학생들처럼 다양한 알바 경험도, 예체능계 학생들처럼 특별한 재능도 없는 인문계 학생들에게 대학은 진로를 위한 한 줄기 희망이 아닐까 싶다. 인구론(인문계 졸업생 90%가 논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등과 같은 문과 비하적인 신조어들이 남일 같지가 않다. 문과생들에게 대학이란 마치 게임에서 말하는 스킬트리의 정점과 같은, 오르지 않으면 뒤쳐지고 불완전해 존재 의미조차 무상해져버리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단순히 취업이 목적이 아니라 나처럼 장래희망을 성취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 경우라 해도, 이 문제는 잠시 미뤄질지언정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학비 마련 등을 인해 그나마 전공과 관련된 과외나 시간제강사 자리를 구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유명한 대학에 입학하려 발버둥 쳐야한다.
안 그래도 이러한 고민으로 힘든 나에게 학교는 고3 수험생이란 이유로 과도한 학습시간과 반인권적인 규제들을 요구한다. 동아리와 각종 학교행사에서 배제시키고,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붙잡아 두는 것도 모자라서 주말과 휴일에도 자습을 시킨다. 힘든 일과에 지쳐서 잠시 쉬고자 하면 "너희들이 이러고도 고3이냐"면서 윽박지르기 일수이고, 날이 갈수록 이상해지는 교칙과 각종 규제들이 숨통을 조른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다보니 이제는 단순히 학교 뿐아니라 살기가 싫어질 정도다. 오죽하면 자살이란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친구들과 주고 받게 되었을까?
앞으로의 10년을 좌우한다고 하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사람들은 공부에 더욱 전념해야 할 기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까지 오랜 회복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수면시간 마저 부족할 만큼 빡빡한 일과를 마치는 데 모든 여력을 쏟아야 하고, 그러고 나면 진이 빠져 항상 피곤하다. 얼마 안되는 수면시간도 불면증 때문에 더욱 줄어들고, 다음날 학교에선 지쳐 쓰러지기를 반년이 넘도록 반복하고 있다. 무기력해서 책상에 앉아있는 것 조차 버겁지만, 억지로라도 펜을 들어도 공부 효율은 그닥 좋지 않다. 예전의 반도 안되는 시간을 집중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 이것 또한 스트레스다.
요즘은 수능, 대학이니, 취업이니 하는 건 다 집어치우고 그냥 빨리 졸업이나 해서 이 감옥같은 학교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단언컨대, 대한민국의 고3은 진학과 진로를 어떻게 정했든지 간에 살아서 무사히 졸업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