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10. 15:09ㆍYosm Special
Special 02
:: 학생보다 취업률이 먼저인 교육
▲ 취업과 창업에 중점을 두는 특성화고등학교 (출처 : 청주 MBC 뉴스)
경쟁과 차별로 얼룩진 취업 교육 전선
한국 고등학교를 대표하는 말은 보통 ‘입시 교육’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학생들이 ‘입시’에 매달리게 되는 이유는 길게 보면 결국 취업을 위해서이다. 대학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음으로써 더 돈을 잘 벌고 더 좋은 일자리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관점에서 한국 학교의 교육은 모두 ‘취업’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입시 일변도 교육의 대안으로 특성화고등학교, 직업기술을 훈련시키고 바로 취업을 시키는 학교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이야기되곤 한다. 그러나 입시 교육과 취업 교육은 실상 그리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대학입시를 벗어나기만 하면 청소년들의 진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입시가 아닌 ‘고졸취업’을 표방하는 특성화고는 어떨까?
특성화고와 입시
“특성화고에 가려면 내신을 따지고, 소위 정부에서 밀어주는 ‘명문’이라는 학교들은 내신 10%, 15% 그 이하는 학교에 입학조차 못한다.” 특성화고에 다니다가 최근 학교를 자퇴한 보리 씨의 이야기다. 올해 특성화고를 졸업한 함이로 씨도 “원래 디자인고를 가려고 했는데 내신 성적이 개판을 쳐서 갈 수 없어서 컴퓨터 전산 관련 학교를 왔다. 그만둘까 고민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상당수 학생들은 적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성적에 맞춰서 진학을 하게 된다.
특성화고도 학교마다 분야마다 취업률이나 학생들의 진학률, 신입생 지원율 등도 큰 격차가 난다. 정부에서도 일부 ‘마이스터고’에 다른 학교의 2배 이상 예산을 지원하는 등 학교에 차별을 두고 있다. 보리 씨는 “이미지가 좋지 않은 학교에 들어가면 성적 1, 2등급 이하는 취직 과정에서 낙오된다고 봐야 한다.”라고 체감하는 현실을 전했다. 특성화고도 양극화와 서열화를 낳고 있다는 우려가 나올 만한 상황이다.
학생이 아닌, 학교를 위해
▲ 최저를 기록하는 청년 취업률은 취업 교육에 영향을 미친다.
특성화고들 중에는 학생들에게 취업을 강요하거나 취업률을 부풀리는 곳들이 상당수 있다. 감사원이 올해 4월 발표한 실태에 따르면 특성화고 취업률은 많은 부분 부풀려져 있다. 전공과 무관한 기업에서 현장실습을 시키거나 문제가 있는 기업에 취직을 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취업률을 집계하는 때까지만 퇴사하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했으며, 대학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에게 취업을 종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학생들의 진로를 함께 모색하고 돕기보다는 당장의 학교 실적이나 이미지를 위해 취업을 시키고 보는 사례들이다. 취업률이 정부 지원의 기준이 되고, 정부에서 취업률 목표를 일방적으로 정해서 압박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학교에서 연결해주는 일자리가 문제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험이 많은 업체나 노동조건에 문제가 있는 기업이더라도 학교는 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중개한다는 것. “내가 다녔던 학교의 경우, 취업률이 높다고 하지만 실상은 학교에서 취업 보내주면 2/3는 1년 내에 돌아온다. 대기업 보내주는 건 성적 좋은 일부 이야기고, 보통은 다들 하청업체 쪽으로 보내진다. 그런데 악덕 사장이 적지 않다. 학생들을 이용해먹으려고 학교취업기업목록에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버티지 못하고 돌아오는 사람도 많고.” 보리 씨의 이야기다.
이와 같은 것들은 학생들의 진로나 행복, 적성, 안전 등보다는 당장의 취업률에 급급하니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민 씨는 이런 현상에 대해 “인문계 고등학교가 수능과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경쟁에 학생들을 내모는 것과 똑같이 닮아있다. 특성화고 교무실에는 취업률 현황표가, 인문계고 교무실에는 대입 현황표가 붙어있다. 취업률에 따라 학교 지원금이 결정되고, 심지어 교장, 교감 선생님 성과급까지 달라지는 신자유주의 교육체제가 또 하나의 거대한 밑그림이었다.”라고 비판했다. (2015년 9월 10일 인권오름 「특성화고 현장실습을 아시나요?」)
'취업을 위한 학교'의 문제점
학교의 사정과 편의에 따라 학생들의 삶과 진로를 꼬이게 만드는 것은 적성에 따라 좋은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온 학생들을 속이는 일이다. 취업률을 부풀리고 입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서 과장 광고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단속을 하거나, 학교에서 노동조건 등을 확실하게 감독하도록 하는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는 학교 차원의 노력으로 다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 사회의 일자리 중 그나마 괜찮은 곳, 소득이나 노동조건이 좋은 곳은 적다. 정부에서 해고를 쉽게 만들려고 하고 노동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으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는 추세다. 학력이나 학벌에 따른 차별도 여전히 크다. 학교에서 고졸 취업을 어떻게 잘 해보려고 해도 한계가 뚜렷하다는 이야기다. 직업교육이라고 하면 ‘성적이 아니라 적성에 따른’ 뭐 그런 걸 상상하기 쉽지만, 실제 현실은 경제상황 등에 좌우되는 것이다. 전공 분야에 일자리가 없고, 불안정한 일자리, 알바 자리만 넘쳐나는데 학교에서 무슨 수가 있겠는가. 학생들 입장에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부당한 조건에라도 취직을 해야 한다.
보리 씨는 “더 좋은 취직,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성적을 가지기 위해 공부하고 경쟁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강제야자나 보충수업도 있었다. 기숙사에서는 정규 수업이 끝난 후에도 남아서 보충수업과 강제야자를 시켰다. 특성화고 역시 취직이라는 이름으로 경쟁에 내몰린다.”라고 학교의 강압적 공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함이로 씨도 “취업 때문에 부담이 간다. 성적을 보는 회사들도 많아서 공부를 해야 하고, 다들 자격증도 많이 따야 한다. 취업을 위해서 자소서(자기소개서) 쓰기 연습을 해야 하고... 정말 위에만 남는 거고 나머지는 다 떨어지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회의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대학생들이나 대졸자들이 ‘스펙’을 쌓고, 자격증을 따고, 면접과 자소서를 준비하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청소년들은 대학을 간 뒤에 취업에 매달리고, 그렇지 않은 청소년들은 좀 더 일찍 취업에 매달린다. 대학에 안 가면 대학 학비를 덜 들이는 대신, 더 안 좋은 조건으로 취업할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사실 ‘취업률’을 내세우는 학교가 취업학원과 다를 바가 무엇인지, 과연 교육적인 것인지 의문도 든다. 청소년들의 진로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학교만이 아니라 복지제도나 노동구조 등 사회적 변화가 필요하다.
[공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