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30. 16:21ㆍ인터뷰
학생들을 인간으로 안 보는 것 같았다.
- 학교 체벌에 대해 사과를 받아낸 고등학생 김민경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되더라도, 여전히 학교에서 체벌을 겪는 학생들은 많다. 불법적인 폭력인 셈이다. 그런데 체벌에 대해 학교에서 공개 사과문을 발표하게 한 학생이 있다. 경기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김민경 씨(본인 요청으로 가명 처리)는 중학교 때 체벌 사건에 대해 사과를 받아냈다. 그에게 청소년이 겪는 폭력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중학교에 다닐 때 체벌 경험이 얼마나 있었나?
단체기합은 많이 받았는데 내가 직접 많이 맞은 건 아니다. 그렇지만 자주 보였다. 교사들이 다른 학생을 눈앞에서 체벌해서. 뺨을 때리거나, 드럼채로 발바닥이나 종아리를 때렸다. 숙제를 안 해오거나, 수업시간에 졸거나 그런 이유들이었다. 수학, 영어, 국어교사 등 여럿이었다. 단체기합은 책상 위에 무릎 꿇고 손들고 있게 하거나 ‘엎드려 뻗쳐’ 등. 지각한 애들을 오리걸음도 시키곤 했다.
한번 이런 일이 있었다. 평소에 문제아라고 찍혔던 애가 있었다. 그런데 걔는 안 떠들고 그 주변 애들이 떠들었다. 영어 교사가 갑자기 들어와서 그 애까지 다 불러내서 막 때렸다. 걔가 안 떠들었다고 억울하다고 했는데 그 교사는 “넌 안 봐도 뻔해.” 하면서 때렸다. 그때 그걸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교사가 증거도 없이 자기 편견만 갖고 때리는 것도 그렇고, 떠들었다고 때리는 것도 좀 이상한 거 아닌가?
- 법적으로 학교에서 때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경기도는 특히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 몇 년이나 됐다. 그래도 체벌이 자주 있었나?
중학교 국어교사는 “신고할 테면 해봐라. 그래도 난 때릴 거다”라고 대놓고 말했다. 자기가 징계 받더라도 때리겠다고... 학생인권조례 처음 시행될 때는 내가 초등학생이었다. 초등학교에서도 손바닥 많이 맞았고, 자리 바꾼 걸로 ‘앉았다 일어났다’ 400번씩 하곤 했다. 학생인권조례 시행될 때 교사들의 반응은, “이런 거 다 필요 없다. 너희한테 지금 중요한 건 인간이 되는 거”라며 맞아야 한다고 했다.
- 체벌이 금지되어 있는데도 왜 학교에서 따르지 않는 걸까?
일단 학생들을 ‘인간’으로 안 보고 그냥 ‘애새끼’, '인간 만들어야 될 무언가’로 보는 거 같았다. 그리고 나는 학생인권조례에서 하게 돼있다는 인권교육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체벌이 안 된다는 그런 내용도 못 들었다. 책자가 한 번 나온 적은 있는데 제대로 설명도 안 해줬다. 당하는 학생들이 잘 모르니까 사라지지 않는 면도 있다.
“학교에서 사과한 건 좀 놀랐다”
- 체벌을 당할 때 본인이나 다른 학생들이 평소에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나는 엄청 빡치고... 하지만 내가 체벌은 안 된다고 하면 다른 애들은 “왜 나대” 하는 시선으로 보곤 했다. 나 때문에 벌점 받게 된다고 짜증내기도 했다. 다른 애들도 체벌을 싫어했지만 벌점 받느니 차라리 맞는 걸로 끝내자고도 생각했으니까. 선생님들은 ‘너는 아닐지 몰라도 얘들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 ‘네가 히어라라도 된 줄 아느냐’ 라고 비꼬곤 했다.
- 학교에 어떻게 문제제기를 했는가?
처음에는 현장에서 왜 때리냐고 얘길 했다. 효과가 하나도 없었다. 교사들은 자존심 때문에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벌점까지 주고. 그래서 그 다음에는 교장에게 편지를 썼다. 이런이런 교사들이 때린다, 교장이 조치를 해달라고. 그랬더니 줄기는 했는데 없어지진 않았다. 그 뒤에는 아수나로나 다른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서 증언을 녹음하고 학교에 공문을 보내고 교육청에 정식으로 민원을 냈다.
- 결과가 어땠는지?
학교의 사과문이 올라왔다. 제목이 학생인권 침해에 대한 사과였고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송구스럽다.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노력과 지도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니 너그럽게 이해하고 지켜봐달라.”라고. 교사들의 행동을 덜 나쁘게 포장하려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잘못 쓴 사과문의 예시로 들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가해자들에게 제대로 책임을 지게 한 것도 없다. 그래도 체벌이 좀 없어지긴 했을 거고, 공개 사과문이 올라온 건 좀 놀랐다.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던 걸까?
‘아싸’가 되지 말고 함께 싸우자
- 학교에서의 체벌 외에 청소년으로서 폭력을 겪어본 경험이 있나?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랑 둘이 살면서부터... 아버지에게 맞았다. 청소를 안했다, 설거지를 안했다 같은 이유로 맞고, 또 그냥 자기가 화가 나서, 술을 먹고 와서, 명분도 이유도 없는 체벌을 당한다. 창밖으로 소리가 다 들려서 경찰이 온 적도 있고 그렇다.
작년에 경찰이 와서 하는 말이 “그래도 아버지니까 용서해줘라.”라고 했다. 별로 심각하게 생각을 안 하고 귀찮아한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버지도 가정폭력 피해자였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나 할머니를 엄청 때렸다고... 그걸 알고 처음엔 화가 났다. 자기도 피해자인데 왜 또 가해를 하는지.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의문도 들지 않을 정도로 싫어져서 뭐... 그저 내가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 내가 또 그러면 어떡하나.
- 교사의 폭력보단 학생들 사이의 폭력, 소위 학교폭력이 더 심각하지 않냐는 주장도 있다.
나도 학생들한테 괴롭힘, 폭력을 당해봤다. 초등학교 때, 따돌림 대상이어서... 그런 상황을 전학을 와서 벗어났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엔 빈도도 교사의 폭력이 더 많고 심각성이나 폭력의 정도도 더 크다. 보는 기준 자체가 균형이 안 맞게 되어 있는 것 아닐까? 교사의 폭력은 막 때려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넘기지만 학생은 카톡으로 욕설만 보내도 학교폭력이라고 하는 식이다. 물론 개인 경험차가 있을 거고, 둘 다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 청소년들이 겪는 폭력들은 왜 일어난다고 생각하는가?
청소년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교사, 부모, 선배 같은 사람이 가해를 하는 건 소위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서인데, 때리면 즉각적으로 자기 눈앞에서 효과가 나타난다고 믿는 듯하다. 그게 폭력의 이유가 될 수도 없고, 사실은 “앞으로는 이 사람한테 안 걸려야지”할 뿐인데. 또 무섭게 하고 때리는 교사가 있으니까 반작용으로 안 그런 교사들을 우습게 보는 것 같다. 폭력을 가하는 교사는 다른 교사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셈이다.
학생들 사이에서의 폭력은... 외모나 다른 어떤 이유로 약자인 쪽에 가해지기도 하는데, 사실 그냥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도 일어난다. 그런데 어른들은 학생들 사이에 별 거 아닌 일로도 그런 폭력이나 괴롭힘이나 다툼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잘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학생들이 별로 착하거나 순수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대책을 세우면 좋겠다.
- 학교에서 체벌 문제 등으로 힘든 다른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일단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아싸(아웃사이더)가 될 일은 하지 않도록... 그러면 증언을 해줄 사람도 없고 힘들다. 아무 계획 없이 그 자리에서 욱해서 나서서 따져도 역효과만 나는 것 같더라. 사실 청소년들은 폭력을 당할 때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말해봤자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서. 하지만 불만을 가진 사람, 싸우는 사람이 당신만 있는 건 아니니까, 우리가 같이 싸우면 개선할 수 있다.
[공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