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30. 15:55ㆍ칼럼-청소년의 눈으로
청소년의 눈으로
:: 학교 폭력의 주체는 누구지?
학교 강당에 학생들이 줄줄이 들어차고 경찰관이나 학생 주임이 앞에 나와 마이크를 잡고 열변을 토한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떠들거나, 잠을 자거나… 어쨌든 집중은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연례행사처럼 볼 수 있는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의 모습이다.
형식적인 학교 폭력 예방 교육조차 그 때 뿐이다. 막상 실제로 사건이 터지면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덮기에만 바쁘다. 피해자의 뒷감당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화해를 시켜버리거나, 도리어 피해자를 욕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당국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학교 폭력 예방보다는 학교 폭력으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에 엮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학교의 태도는 학교 폭력 피해자에게 엄연한 2차 가해다.
이 쯤 되면, ‘학교 폭력’의 주체도 모호해진다. 사실 ‘학교 폭력’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학생 간의 폭력’이 아니다.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2조에서 말하고 있는 학교 폭력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폭력’이다. 학생 뿐 만 아니라 교사, 학부모, 심지어는 교육 당국까지, 모두가 학교 폭력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학생 간의 폭력은 많은 이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있지만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학교가 저지르는 폭력은 대부분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 ‘바른 언어생활 선도 학교’라는 푯말이 무색하게 교사들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욕설, 성 편향적인 발언들과 학생들을 말려 죽이는 경쟁의 치킨 게임*, 그리고 헌법과 국제인권조약, 심지어 일부의 경우에는 학교의 교칙까지 무시하면서까지 자행되는 두발과 복식 등에 관한 인권 유린까지, 학교에서 볼 수 있는 학교 폭력의 모습은 학생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폭력의 기원은 일본 군국주의식 강제교육 모델과 군사 독재 시절의 잔재에 있다. 한국이 받아들였던 일본 군국주의식 의무교육은 민중들을 강제 동원해 산업 현장이나 국가가 필요한 곳에 빨리 투입하기 위한, 착취와 폭력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현대 교육은 그러한 과거에 근거한 학교 자체의 폭력적인 면은 자각하지 않고 학교 폭력의 주체를 학생으로 왜곡하며 실용성 없는 학교 폭력 대책만을 매년 쏟아내고 있다.
교육부에서 가장 최근에 제시한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2012)은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다. 먼저, 학교폭력 신고 대표전화 117’을 운영한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이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하교할 때까지 학생들의 핸드폰을 압수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리고 거의 모든 인문계 고교 학생들은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밤 10시가 넘어서 하교한다. 대체 신고는 언제 하라는 걸까? 이 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의 ‘건강한 인성’을 키운다는 5번 대책에서는 학년 초, 규율준수를 위해 학생ㆍ학부모의 학생생활규칙동의서 제출을 명시한다. 학생이 학교 규칙을 정하는 데 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으면서 학교 규칙에 동의한다는 서약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은 건강한 인성이 아닌, 규칙에 순종적인 학생만을 키울 뿐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이 학생생활규칙동의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하는 경우는 용납하지 않는다. 교무실에 불려가 혼이 나거나 ‘이상한 아이’로 취급당할 뿐이다. 결국 학교 내에서는 형식적인 서류로 전락했을 뿐 아니라 학생의 동의를 근거로 교사의 권위만 상승시켰다.
그 외에도 6번의 가정의 교육 기능 회복에 대해서는 매주 수요일 '가족사랑의 날'은 정시 퇴근하여 '밥상머리교육'을 실천한다고 나와 있다. 매주 수요일이 ‘가족사랑의 날’이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어떻게 수요일마다 정시 퇴근할 수 있는지도 설명을 하지 않았다. 현재 대한민국의 노동현실을 비추어봤을 때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학교 폭력만큼 빈번히 일어나는 것이 가정에서의 폭력인데, 가족과의 식사가 즐겁지 않은 청소년들이 있다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경솔한 대책이었다.
교육부의 학교폭력 대응 포털 ‘도란도란’에는 ‘폭력은 언제나 반대되는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라는 장 폴 샤르트르의 말이 걸려 있다. 교육부에서 그냥 멋있으라고 샤르트르를 인용한 것은 아니길 바라지만, 교육 당국은 이 어구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언제쯤 일상적인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치킨 게임 :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이론.
[정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