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눈으로 :: K 이야기

2015. 11. 10. 15:17칼럼-청소년의 눈으로

칼럼-청소년의 눈으로

:: K 이야기


K에게는 그것이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목적지를 알지 못했으니 막연히 이정표를 따라갈 수밖엔. 목적지를 찾기 위해 더듬거릴 시간이 K에게는 없었다. K는 “배드민턴 랠리를 하는 기분”이라고, “공은 점점 빠르게 날아오는데 나는 되받아칠 자신이 없다”고 했다. 어느 날은 한 아이가 성적 비관으로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했고, 침묵의 교실 속에서 ‘나는 살아있는지’ 계속 물어야 했다고 했다. K는 말했다. “누구나 잘못된 것을 알고 있어. 다만 이야기하지 못할 뿐이지.”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길이었다. 삶에서 다른 가능성은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또 다른 K이다. 대학에 가지 않는 K. 나는 올해 초,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자신과 대학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른 꿈, 다른 목표를 가져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입시만을 바라보는 고등학교 3학년의 교실에서,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내가 믿어왔던 삶의 가능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닳았다.


K들에게 가능성은 ‘노오오오오력’을 한다고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1,2 등급도 결국에는 치킨을 튀기게 되는, 사회 안전망 없는 불안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누구나 K다. 대학을 붙든, 취업에 성공하든 늘 불안할 K다. 이런 K들을 위해 필요한 것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꼰대질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다.


나는 기본소득과 최저임금 1만원을 제시하고 싶다. 기본소득은 노동의 여부나 재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일정한 소득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지금은 이미 노동력이 넘쳐나는 시대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동력이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제도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강요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기본소득은 조금 덜 일하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의 발판이 될 것이다. 당장 생계에 목매야 하는 K의 삶에서 다른 가능성이 될 것이다.


또한 일반적인 임금노동 형식에서 비껴서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본소득은 절실하다. 노인, 장애인, 아동 등 임금노동을 하기 힘든 사회적 약자들, 예술가나 시민단체 활동가 등 임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 갖가지 문제로 노동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은 생계를 보장하는 안전망이 될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 역시 꼭 필요한 정책 중 하나이다. 2015년의 최저임금인 5580원은 정부가 산출한 1인 가구 생계비조차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로 낮다. 그럼에도 경영계는 노동개혁을 통해 ‘최저임금을 3년에 한 번씩 올리자’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는 곧 3년간 최저임금을 동결시키겠다는 말과 같다. 이미 낮은 임금은 K들의 삶을 뼛속까지 옥죄고 있는데 말이다. 더 이상 양보할 것 없이 가난한데 말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K의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이며, 재벌들의 왕국에서 부의 재분배를 이룰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재벌의 곳간을 열어 최저임금 1만원!



출처 : 알바연대

△ 지난 1월 알바노조 구교현 위원장의 '홍길동 분신술' 판넬 시위 중 하나. 

"최저임금 1만원이 되면 내집에서 사는 행복이 시작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필요하다. 입시경쟁과 취업경쟁이 아니면 죽음으로 내몰리는 작금의 사회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버려지는 사회 속에서, K의 존재는 너무도 쉽게 삭제된다. 만약 K -그가 누구든- 라는 하나의 생명이 내일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면, 경쟁 사회에서 탈락한 개인을 책망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양지혜 (청소년세미나모임 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