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2. 01:59ㆍ극한직업청소년
극한직업 청소년
:: '고삼'
고1, 고2들에게 고3은 학교에 있는 듯, 없는 듯 유령 같은 존재이다. 고삼은 언제나 (말그대로 언제나) 학교에 있지만, 대부분 다른 교실들과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어 웬만한다른 사람들은 고삼을 볼 수가 없다.
‘고삼빼고’
학교에서 모든 행사는 ‘고삼 빼고’ 이루어진다. 빡빡한 학교 일정 중 그나마 가끔 있는 행사들인 체육대회, 현장학습, 학년회장 선거 등에서도 고삼은 제외된다. 아무도 고삼이 왜 없는지, 어디 있는지 묻지 않는다. 암묵적으로 고삼은 어딘가에 처박혀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교육감? 개방적인 학교 분위기? 고삼은 코웃음 칠 것이다. 9시 등교, 선택형 자율학습은 ‘감히 고삼한테’ 이름을 들이밀지 못한다. 게다가 공휴일에도 고3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하고, 고요한 거리엔 고삼 대상 학원가들만 북적북적하다. 이쯤 되면 ‘학생’이라는 이름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수능기계, 입시기계가 아닐까? 학교에서, 아니 그들의 삶에서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지금 고삼이다. 고삼이 된 지 두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생각보다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대학을 수시로 가는지, 정시로 가는지, 대학을 가지 않는지에 따라 고삼들의 고민은 모두 다르다. 나를 지금 가장 짜증나게 만드는 말은 뻔질나게 듣는, ‘고삼만 버텨라’라는 압박이다. 나는 인간으로 살고 싶은 것을 1년 간 참아야 할까? 1년만 지나면 정말 모든 비인격적인 대우가 끝이 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알량한 마시멜로 같은 조언이 불쾌하다. 눈과 귀를 막는 그런 조언에 또 힘이 난 척,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고삼은 정말, 극한직업이다.
[치이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