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11. 13:25ㆍ리뷰 ver.청소년
나, 이윤나의 벌새 리뷰
-<벌새> 스틸컷
※ 이 글은 영화 <벌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벌새를 처음 본 날, 나는 눈물을 닦으며 상영관을 나오면서도 이 영화가 어떻게 나를 위로해주었는지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은희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이 나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다시 보고, 계속해서 곱씹으며 1994년 15살의 은희와 나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은희는 과거 혹은 현재의 나였다. 영화를 보는 138분은 내 안에 있는 은희의 조각들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15살의 나는(어쩌면 지금의 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매순간 모든 관계에 최선을 다하는 아이였다. 공중에 떠있기 위해 1초에 90번씩 날갯짓을 하는 벌새처럼 말이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더 많았고, 소중한 관계들은 하나같이 잘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어긋나버렸다. 그렇다고 속상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비칠 때면 나는 ‘중2병’이라는 말을 듣거나 ‘이상한 여자아이’가 되어야 했다.
이 영화를 보며 줄곧 ‘이상하다’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주로 나보다 앞서 살아온 사람들이 만들어낸 ‘여자아이’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을 때 이상하다는 말을 듣곤 했다. 하지만 은희는 여자아이가 애교도 못 부린다는 엄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이상하지 않다’라고 외쳤다. 그 모습을 보고나서야 나는 내가 이상한 아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중2병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나 자신을 탓하며 애써 넘겨두었던 마음들을 돌이켜보기 시작했다. 그 어려운 마음과 시간들이 나만의 것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되었다.
물론 1994년을 경험해보지 못한 관객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었다. 지금은 그저 큰 다리인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장면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고, 은희의 삐삐에 적힌 ‘1004 486 486’의 의미는 시나리오북을 사 읽은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엑스관계를 맺은 유리의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라는 대사는 며칠을 생각하고 gv를 다녀오고 난 후에야 어렴풋이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도 좋아하는 동성선배에게 알 수 없는 마음으로 꽃을 선물해본 적이 있고 우리는 모두 지난 4월 노란 리본과 함께 아픈 마음을 나누어본 경험이 있다.
은희의 이야기가 1994년에 있다는 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은희라는 아이를 통해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하는 ‘벌새’는 마치 영지선생님같은 존재로 나에게 다가왔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우며 표현하기조차 어려웠지만 모두에게 있었던 그 시간들을 비교적 최근에 겪은 나에게 그렇지만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고 이 영화는 말해주었다.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은희의 표정을 보며 나는 알 수 없는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10년 뒤에 꼭 다시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영지선생님을 동경이 아닌 공감의 대상으로 느낄 수 있을지, 은희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을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 이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