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다고 해서 패션을 모르겠는가

2014. 12. 1. 16:49Yosm Special


[Special] 어리다고 해서 패션을 모르겠는가




  사람들의 편견도 청소년들의 패션에 걸림돌이 된다. 편견은 규칙이 되지 않더라도 청소년들을 압박한다. 길거리에 청소년이 짙은 화장을 하고 지나가면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악세서리 또는 피어싱을 하거나 타투(문신)를 한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선도 부정적이다. 꾸미는 것은 ‘청소년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눈에 띄게 꾸민 청소년을 ‘노는 애’라고 부르는 일이 있다. 옛말로는 ‘날라리’이다. 여기에는 청소년들은 공부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깔려 있다. 노는 것도 외모에 신경 쓰는 것도 잘못이라는 것이다. 튀는 패션을 한 것만으로도 ‘비행’이나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까지 선입견을 갖는 경우도 생긴다. 그밖에도 청소년들이 ‘하의 실종’, 미니스커트 등 ‘노출패션’을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고, 옷에 돈 쓰는 것을 적대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학교의 용의복장규제와 사회적 편견은 서로 돌고 도는 관계에 있다. 학교는 청소년다운 외모에 대한 편견을 기준으로 규제를 한다. 학교의 규제는, 꾸미는 청소년들은 규칙을 어기는 청소년들이므로 비행청소년일 거라는 선입견의 근거가 되어준다. 그러면 또 학교는 “우리 학교에 ‘노는 애’들이 많아 보이면 이미지가 안 좋아진다.”라며 규제를 한다.



  청소년들 사이에도 편견은 이어진다. 튀는 화장이나 액세서리를 한 청소년들은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노는 애’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튀는 옷을 입거나 화장을 하는 것이 ‘잘 나가는 애들’만 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친구들 사이에서 ‘잘 나간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그런 패션을 하면 눈총을 받는 일마저 있다. 획일적 편견과 문화가 낳은 부작용이다.



  예쁜 옷을 골라 입고, 화장을 하고,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모두 자신을 꾸미는 방식이다. 하지만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이조차 제한받는 처량한 신세다. 1973년, 정부가 거리에서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규제의 진정한 이유는 기성세대의 문화와 권력에 저항하는 청년들을 억압하는 것이었다. 이 법은 사라졌지만, 청소년에 대한 편견과 억압은 여전하다. ‘나이에 맞지 않는다’라고 하지만, ‘나이에 맞는 패션’이 딱 정해진 것도 아닐 뿐더러 근거 없는 편견 이상이 되기 어렵다. 어리다고 해서 패션을 모르겠는가. 어리다고 해서 개성도 자유도, 모두 버려야 한다는 말인가.



[히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