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9. 21:33ㆍ리뷰 ver.청소년
약자의 입장에서 가족 바라보기
한국의 가족주의가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아동의 입장에서 가족 문제를 이야기하는 책은 드물다. 〈이상한 정상가족〉은 가족 내에서 가장 위계가 낮다고 할 수 있는 아동의 주체성과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우리 사회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동생의 탈가정을 마주했던 경험은 새삼 내가 가족에 얼마나 속박되어 있는지 깨닫게 된 계기였다. 작년 이맘때쯤, 동생(활동명 : 피아)이 집을 나와 서울에 오고 내 핸드폰은 온갖 알림으로 불이 났다. 피아의 세 번째 탈가정 시도 이후였다. 부모는 피아가 탈가정 한 것을 나의 탓으로 돌렸다. 광기 어린 메시지들이 나를 비난하며 채팅창을 도배했다. “동생이랑 같이 있지 마라. 비빌 언덕이 있으니 계속 서울로 가는 거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도 있었다. 한편에서는 부모로부터 도망쳐 무작정 서울에 온 피아가 간절하게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걸어 왔다. 나는 결국 그 순간 피아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부모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으려는 피아 앞에서, 나는 그러한 결정을 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굴레처럼 느껴졌고, 그 앞에서 나의 주체성은 보잘것없이 작아졌다.
한편으로는 피아를 돕지 못하는 것이 절망스러웠다. 그동안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탈가정 청소년의 취약한 사회적 위치에 대해 이야기했던 나였다. 나를 책망하는 피아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스스로가 위선적인 것 같았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그 순간 부모에게 순종하는 딸로서의 자아가 내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소년활동가로서의 나는 가족과 연관되는 순간 한없이 취약해졌다.
내가 부모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부모의 경제적 지원 때문이었다. 지금 나의 유일한 수입원은 부모로부터 받는 용돈이다. 글쓴이는 상당수의 청년이 독립을 유보하는 이유로, 부모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곧 계층하락을 의미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사회에서 임금노동에 진입하지 못하는 청년층의 복지를 뒷받침하는 유일한 제도가 가족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이 응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던 나는, 폭력을 겪고 있던 동생의 손을 잡지 못했다.
입장을 바꾸어, 청소년인 피아의 경험을 들어 보자. 피아는 아빠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탈가정 청소년’이 되었다. 아빠는 나와 피아가 어렸을 때부터 작은 일에도 크게 화를 냈고, 나와 피아에게 거의 매일 심한 욕을 했다. 어느 날 아빠는 피아가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부모에게 대든다는 이유로 피아를 심하게 때렸고, 피아는 집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그러나 피아가 갈 곳은 아무데도 없었기 때문에 다시 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피아는 다시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집에서 안전하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완전히 집을 나오게 되었다.
체벌은 아무런 토대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체벌은 하는 이와 당하는 이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기반으로 상대의 몸에 고통을 가하고, 그럼에도 상대가 대항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입증될 때 이루어진다. 피아가 체벌을 당한 후 언제 또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던 것처럼, 체벌을 당한 이는 체벌을 한 이에게 자신의 삶을 일부분 저당 잡힌다. 자신의 행동이 체벌을 가하는 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검열하고 눈치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에서는 체벌이 “나는 언제든 당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권위주의적 메시지, 당신이 존재할 권리를 결정하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때리는 사람인 나라는 주장, 그렇게 힘으로 상대를 침묵시키고 상대의 목소리를 부정하고 때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상대 안에 심으려 하는 시도”라고 말한다.
글쓴이는 한국 사회에서 친권이 지나치게 강력해 아동보호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부모가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더라도 아동이 부모에게서 떨어져 사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친권자를 통하지 않으면 통장을 개설하는 것, 휴대폰을 개통하는 것, 상급학교 진학을 하는 것 등이 모두 거의 불가능하다. 피아는 탈가정 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적다는 것을 깨닫고 불법으로 다른 비청소년의 명의를 빌려야 했다. 이처럼 친권의 강력한 존재 때문에 실질적으로 탈가정 청소년을 지원하려고 하면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드나들어야 한다.
책에서는 궁극적으로는 아동의 인격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전통적으로 ‘사적 영역’으로 간주하던 가정 내에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정을 사적 영역으로 내버려두었을 때, 사회적으로 더 많은 권력을 가진 부모는 자연스럽게 가족의 주인 역할을 하게 된다. 청소년 자녀가 주인인 부모의 소유물처럼 취급당한다면, 가족 안에서 폭력을 겪는 청소년 자녀는 그에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가는 법을 만들고 감독 기관을 두어 가정 내에 개입해 가정 내 약자인 청소년 자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부모를 자녀의 인권을 침해하는 가해자로 상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큰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아동이 느끼는 부모의 억압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부모의 입장에서 “내가 얼마나 힘들게 너를 키웠는데”라는 억울함의 반응이 뒤따랐다. 그러나 〈이상한 정상가족〉은 이러한 문제가 자녀가 부모의 고통을 헤아려 침묵하고 순종하는 방식으로 해결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피아가 탈가정 했을 때 내가 마음속으로는 피아를 지지했지만 겉으로는 침묵하며 부모에게 순종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부모로부터 폭력을 당하던 피아가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집을 나왔을 때 겪었던 고초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이 책의 주장이 실현되는 세상이었다면, 나와 피아는 다른 상황을 마주하지 않았을까.
- 치이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