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10. 22:56ㆍ특별 연재/2017 나의 대학입시거부
2017년 11월 16일,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입시를 위한 수능이 치러질 예정이다. 하지만 여기 입시경쟁과 학력학벌차별에 반대하며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창하고 대단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11월 6일부터 15일까지 <2017 나의 대학입시거부> 코너를 통해 대학입시거부자 10여 명의 목소리를 담고자 한다. 이들이 직접 전하는 대학입시거부의 이유와 의미를 들어보자.
-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나를 조그맣게 초라하게 만드는 교육을 거부한다
저는 고양시 일산에 있는 정발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 정재현입니다. 저는 11월 16일 있는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을 기점으로 한국의 대학입시 교육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대다수의 친구들과 다르게 좀 더 멀리 떨어진 외로운 길을 걷게 되겠지만, 저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두렵지 않고 누구보다 더 잘 살아갈 자신이 있습니다.
10여 년 억압받는 교육
저는 교육이란 평등한 것이며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약속하고자 차별과 배제 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교육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난 12년간 경험한 교육은 숫자로 이루어진 친구들의 삶을 짓밟고 나의 경험과 생각을 지운 채 선배들을 따라 거대한 장벽을 넘어 고작 "인간"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소중한 10대라고 포장되는 학교생활이 사실은 일차원적인 점수 따기와 얄팍한 거짓말들로 가득 차 있다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믿기 싫었습니다.
10여 년 동안의 좌절과 억압, 기나긴 자기혐오와 끝이 없는 슬픔을 뒤로한 채 시간이 흐르고 사회인이 되어서야 그 때의 기억을 잊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우리들을 평일 낮 시간의 공원과 거리에서 격리시키는 교실 밖에서 언제나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은 학생들에게 너무나 낯설고 그립기만 합니다. 제가 처음 학교에서 나와 길거리를 하염없이 걸어다닐 때 저는 속상하고 또 행복해서 거의 울 것만 같았습니다.
대학입시교육을 거부합니다
누군가는 그런 반항과 일탈의 감정이 개인적인 것이라고. 우리는 그럼에도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우리들의 삶이 너무나 아름답고 찬란합니다. 저의 시간은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기에도 너무나 부족하며, 저의 감정과 경험을 기약 없는 대학입시교육의 거짓말에 묻어버리기에 저는 너무나 영리해졌습니다.
제가 원했던 교육은 스스로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제가 원했던 교육은 친구들을 깔아뭉개는 게 아닌 함께 성취하는 과정입니다.
제가 바라는 대학은, 지금과 같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갖춰야 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모두가 선택하기에 나도 걸어야 하는 길은 원하지 않습니다. 대학으로는 사람의 가치를 정할 수 없습니다, 또 저의 친구들을 초라하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저를 계속해서 조그맣게 만드는 대학입시교육을 거부합니다.
- 정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