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가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를 위해

2017. 11. 8. 23:32특별 연재/2017 나의 대학입시거부

 2017년 11월 16일,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입시를 위한 수능이 치러질 예정이다. 하지만 여기 입시경쟁과 학력학벌차별에 반대하며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창하고 대단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11월 6일부터 15일까지 <2017 나의 대학입시거부> 코너를 통해 대학입시거부자 10여 명의 목소리를 담고자 한다. 이들이 직접 전하는 대학입시거부의 이유와 의미를 들어보자.

-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대학을 가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를 위해



 졸업을 앞둔 사람으로서, 대학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아주 많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 하니, 내가 대학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고, 막연히 나는 대학을 어차피 안 갈 거니까 거부 행동에 동참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학이라는 건 내 인생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었다. 



고3에 찾아온 불안 


 나는 비인가 대안학교에 12년째 재학 중이고 얼마 후면 졸업을 한다. 대안학교라는 곳이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 대학이 목표인 입시경쟁에 반대하는 ‘대안’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나는 살아오면서 비교적 ‘대학에 가라’는 얘기는 들어볼 기회가 적었다. 여태껏 시험을 본 적도 없고, 성적이니 등급이니 하는 것들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대안학교에서 어떤 것들을 배웠는지는 이 글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으니 생략하겠다.) 자연스레 나도 대학을 목표로 삼지 않았고, 그와 관련된 어떠한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때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졸업을 하면 어디서 나를 데려가 써 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졸업한 선배들을 보더라도 대학에 가는 비율은 1/3 남짓이고, 대부분은 외국으로 여행을 가기도 하고, 바로 일자리 전선에 뛰어들기도 하고, 예술 활동을 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일을 시도하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막연한 기대에 안주하기엔 내가 가진 것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막연함은 불안이 되어 하루하루 나를 옥죄어 왔다. 졸업 학년에 와서야 ‘졸업하면 뭐라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던 막연함에서 벗어나, 이제는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강한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졸업을 하면 최종 학력이 ‘초졸’이다. 대한민국에서 초졸의 학력으로 살아간다는 건 아예 학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일이다. 그제서야 친구들처럼 검정고시라도 봐 둘 걸 했나 자괴감이 들었다. 아니면 아예 불안해하지 말든가, 남들처럼 빡세게 공부해서 대학을 가든가 둘 중에 하나라도 했으면 스트레스도 덜 받을 텐데. 



꿈이 없는 게 내 잘못이야?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말하면 흔히 이런 부류의 질문이 되돌아온다. “도대체 무슨 깡으로?”, “그럼 넌 뭘 할 건데?”. “넌 꿈이 뭐니?” 하지만 글쎄, 나는 딱히 잘하는 것도 엄청나게 하고 싶은 일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예 없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나는 하고 싶은 일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다. 그보단, 나에게 대학을 가지 않는 대신에 다른 계획을 요구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인생 계획이라니, 그걸 19살한테 설계하라는 게 과한 요구 아닐까? 도대체 사람들은 나도 모르는 내 인생 계획을 왜 그리 궁금해하는 걸까? 대학에 간다고 해서 인생 계획이 뚜렷하게 정해지는 건 아닌데 말이다. 


 학교에서는 나만의 키워드를 만들라는 소리를 들었다. 졸업을 하고 ‘진짜 사회’에 나가서 대학을 나온 애들과 경쟁했을 때 나만의 ‘아이덴티티’가 있다면 절대 꿀리지 않을 거라나 뭐라나. 경쟁을 반대하는 대안학교라면서 제도권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다시 경쟁시키려고 하는 이 심보는 뭘까.


 이런 식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는 둥, 네 꿈이 뭐냐는 둥 제발 물어보지 좀 말았으면 좋겠다. 청소년에게 ‘꿈꾸는 것’을 강요하고, 꿈이 없으면 요즘 애들은 삭막하다는 식으로 몰아가기 전에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줘야 마땅하지 않을까. 



승리 없는 경쟁 


 얼마 전 대학 입시 면접 시즌이 되어 부산에 사는 친구 두 명이 번갈아 서울에 있는 우리 집에 찾아왔다. 한 명은 경영학과에 원서를 넣었고, 한 명은 연극영화과에 원서를 넣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라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나 대학이었다. 우리가 이렇게나 대학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 적이 또 있을까 싶었다. 두 친구는 나와 같은 대안학교를 다니다, 다른 인가받은 대안학교로 진학했거나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본 뒤 대학을 준비한 애들이었다. 나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을 보니 오묘한 감정이 들기도 했고 내심 인생에 한 획(?)을 긋고 있다는 것에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우울해졌다. 경영학과를 간다던 친구는 나처럼 대단히 잘하는 것도 하고 싶은 일도 없지만, 취업이라도 잘 되는 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면접을 위해 거짓말로 범벅된 예상 답안을 나눠 읽으면서 이게 뭐 하는 짓거리인가 생각했다. 대학은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이제는 취업을 위해서 스펙을 쌓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그마저도 경쟁을 통해 누군가를 떨어트리고 합격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 무의미하고 슬펐다.


 연극영화과를 간다던 친구는 연기학원에 다니면서 연기와는 무관해 보이며 왜 하는지 알 수 없는 각종 특기와 춤, 노래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실기를 보기 위해 50만 원이 훌쩍 넘는 안무 의상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친구는 대학을 가고 싶은데 그 과정이 너무 ‘엿 같아서’ 죽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차라리 수능 준비를 좀 더 일찍 했더라면 일찍 포기해서 입시 안 했을 텐데 너무 늦게 시작해 버려서 이제는 엄마한테 미안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연극영화과 입시는 연기 실력보다는 외모를 보는 등 공정하지 않은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친구가 다니는 학원에서는 강사들의 외모 품평이나 폭언이 일상적인 것 같았다. 두 친구를 보면서 ‘대학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사람을 갈아 넣어야 하는 걸까’, ‘사람이 왜 이렇게 비참해져야 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는 사실이 두려워졌다. 나는 대학에 가지 않고 잘 살 수 있을까? 



나의 대학거부의 의미 


 아무리 내가 가진 것이 없다고 해도 불안에 휩쓸려서 대학을 선택하는 건 싫었다. 나는 인간의 가치를 고작 ‘몇 등급’이나 ‘인서울이냐 아니냐’로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럴 거면 공부하는 로봇이나 만들지 왜 인간을 로봇처럼 만들지 못해 안달복달이냔 말이야! 그리고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미래에 지레 겁먹고 대학이나 가자는 생각으로 대학을 갔다가 수천만 원의 학비를 날리고 싶지도 않다. 이런 이유로 나는 지금 대학거부를 하지만, 나중에라도 대학에 가고 싶어진다면 다시 진지하게 고려해볼 생각이다. 내가 대학거부를 하는 이유는 모두에게 대학이 전부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은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대학을 가지 않는다고 낙오자가 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대학을 준비하느라 지금 이 순간을 미래에 갖다 바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지금의 나는 청소년인권과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고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인권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이고 나는 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비슷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다. 다시 말해, 나는 대학이 아니어도 괜찮은 사회를 위해, 대학을 거부한다.


- 아고

주변에서 자꾸 뭘 하라고 해서 귀찮은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