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15. 22:11ㆍ특별 연재/2017 나의 대학입시거부
2017년 11월 16일,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입시를 위한 수능이 치러질 예정이다. 하지만 여기 입시경쟁과 학력학벌차별에 반대하며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창하고 대단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11월 6일부터 15일까지 <2017 나의 대학입시거부> 코너를 통해 대학입시거부자 10여 명의 목소리를 담고자 한다. 이들이 직접 전하는 대학입시거부의 이유와 의미를 들어보자.
-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내 십 대의 끄트머리에 서서
평범하게 살다가 촛불과 운동을 만나기까지
나는 소위 ‘교육열 높은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8살인가 9살 때 처음 영어학원에 다녔고,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엔 수학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 나라엔 교육열이 높은 부모들이 많다 보니, 나 정도는 평범한 수준인가 싶기도 하다. 공부는 그냥저냥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진 반에서 5등 정도 했던 거 같다. 공부는 아주 싫어했고, 딱히 열심히 한 적은 없다. 그냥 시험 며칠 전부터 발등에 불이 떨어져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딱 고만한 수준의 성적만 유지했다.
공부는 싫었지만 ‘(입시 커트라인이) 높은’ 대학은 가고 싶었다. ‘장래희망’으로 불리는, 내가 꿈꾸는 직업은 계속 바뀌었지만 ‘인서울’을 하겠다는 꿈 하나는 바뀌지 않았다. 어쩌다 기숙형 고등학교에 들어와선 수능으로 대학을 가겠다고, 정시로 간다며 우겨댔다. 천성이 게으른 탓에 학교 시험 준비를 제때 안 한 나에겐 아직은 시간이 좀 남아 있던(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정시파’가 제법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사실 ‘정시파’는 내 허영심을 챙기기에도 충분한 꼬리표였다. 그래서 내신은 안 챙겨도 수능 공부는 가끔 했다. 내 허영심과 모순되지 않는 성적을 낼 정도로만 애썼고, 그 정도의 점수도 가끔 나왔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많이 싸웠다. 싸움의 상대는 융통성 없고, 고집이 세며,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학년부장 교사였다.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짓들을 해서 징계도 받았다. 학교에선 뭔가 잘못됐고 화나는 일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악에 받쳐 싸웠다. 물론 잘 싸우진 못했다. 그렇게 싸우는 것도 싸울 줄 아는 사람이 잘 한다. 여러 일들을 겪고, 2016년, 고2 겨울 방학에 박근혜 퇴진 촛불을 만났고, 청소년운동을 만났다.
청소년운동은 나에게 언어를 만들어줬다. 부조리하고 화나는 일이 ‘왜’ 잘못된 건지를 알려줬다. 나에게 학교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생긴 것이다. 그러고 나니 잘못된 일들은 더 잘 보이게 되었다. 겨울방학 동안 한껏 각성된 나는 개학을 하자마자 정말 열심히 싸웠다. 하루하루가 다이나믹했다. 힘들기도 엄청나게 힘들었다. 안 그래도 하기 싫던 공부도 접었다. 결국 학교는 개학한 지 한 달만에 나를 없애기로(?) 작정했고, 내게 전학을 가라고 했다. 나는 집 근처의 학교로, 진주로 전학을 왔다.
내 삶을 찾기 위해서
어쨌든, 나는 진주로 와서 더 열심히 청소년운동을 했고, 이런저런 새로운 것들을 만났다. 대학거부도 그 중 하나다. 내 신념은 대학을 거부하라고 외쳤지만, 대학거부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버리지 못한 내 허영심과 학벌에 대한 욕심, 그냥 내려놓기엔 아까운 입시에 바친 돈과 시간, 그리고 내 모의고사 성적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난 내 내면에 숨어있던 이런 것들을 항상 부인했다. “난 학벌주의나 대학서열화, 입시경쟁에 반대하지만,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서 대학에 가려는 거야.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려는 건 높은 대학이 좋아서가 아니라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진 대학을 가고 싶기 때문이야….” 이런 식이었다. 내 행동이 내 신념에 배반하지 않는 것인 냥 자위하고, 나를 속였다. 나는 딴 친구들과 다르다고 믿었다.
나 자신을 의심하고 내 허영심들을 내려놓은 후에야, 다짐할 수 있었다. ‘평범한 길’이 사막 한가운데의 신기루일 뿐임을 인정한 후에야 다짐할 수 있었다. 체제를 직시한 사람은 체제에 반대한다고 선언을 한다. 그리고 그 선언으로 때때로 스스로를 속이게 된다. 나도 그런 케이스였다. 나는 “학벌주의와 입시경쟁에 반대한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말함으로써 어쨌든 대학을 가려고 하는 자신을 합리화했다. 그러던 나는 나에게 녹아 있는 이데올로기를 의심하고 성찰하고 뜯어 내려 놓은 후에야, 내 허영심의 담장을 넘을 수 있게 된 후에야, 대학을 거부하겠다고 다짐했다.
수능이 다가오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대학은 어떻게 할(갈) 거냐”고 물어 온다. 그럼 그냥 “안 가려고(요)”라고 대답한다. (사실 내 속마음은 “거부한다”이지만, 그렇게 말하긴 쉽지 않다. 말하기 싫은 사람에게까지 그게 뭔지를 설명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건 꽤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으레 “왜?”라는 물음이 따라온다. 그럼 그냥 퉁명스럽게 대학을 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그냥 내가 뭔가 다른 생각이나 계획이 있는가 보다 하고 만다.
근데 난 별 계획이 없다. 그냥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난 한 번도 어떤 계획, 나의 꿈을 가지고 산 적이 없었다. 물론 가고 싶은 고등학교도 있었고, 대학교도 있었다. 그리고 학과도 있었고, 갖고 싶은 직장도 있었다. 나는 이걸 마치 내 삶의 계획이라고 착각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라고, 꿈이라고 착각했다. 나는 그냥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들을 갖고 싶을 뿐이었다.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학과도, 직장도, 그저 내가 갖고 싶은 이름표였다. 나는 갖고 싶은 것들을 나열하기에 바빠,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잃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내 삶을 찾기 위해서, 내 존재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어떤 삶을 살지도, 내가 꿈꾸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대학을 간다니, 그게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입시경쟁에 반대한다든지, 학벌에 반대한다든지 하는 멋진 이유를 댈 자격은 나에게 없는 거 같다. 지금껏 그 경쟁에 앞장서 살아왔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는 데 내 십 대를 바쳤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학벌주의에 반대하기에 대학거부를 하겠다고 말하는 건, 좀 부끄럽다.
나는 대학거부로 내 삶을 바꾸려고 한다. 이 무한경쟁과 희망 없는 세상의 희생양이자, 그 세상을 더욱 단단히 유지하는데 한 몫을 해 왔던 내 삶을 조금이나마 틀어 놓으려 한다. 그렇게 내가 누구인지, 내가 살고 싶은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갖고 살아 보려고 한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이 체제의 쳇바퀴 속에서 튕겨져 나오며, ‘평범함’으로부터 동떨어지는 막연한 두려움과 해방감을 몸으로 느끼며 살아보려고 한다. 그렇게 삐뚤어진 삶을 살아 보겠다. 그게 나 자신을 가장 위하는 길이라 믿으면서.
- 이글
아수나로 진주지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 깃발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