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23. 13:33ㆍ칼럼-청소년의 눈으로
"어째서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비청소년과는 다르게 청소년이 담배를 피는 건 문제라고 생각되고, 늘 ‘선도(善導)’의 대상이 되는 걸까?"
청소년은 '자율적인 통제'가 어려워 중독성이 강한 게임에 중독 될수 있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셧다운제.
백남기 농성장에서 청소년이 겪어야 했던 일
작년 1차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신 백남기 농민이 얼마 전 돌아가셨다. 이 일에 대해 경찰은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부검영장부터 발부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시신을 부검하겠다는 어이없는 일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고, 그건 국가폭력으로 돌아가신 백남기 농민을 두 번 죽이는 행위였다. 나는 마냥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 백남기 농성장에 갔다. 하지만 나는 국가폭력에 대항하기 이전에, 내가 청소년이라는 이유(또는 청소년이라고 인식된다는 이유)로 행해지는 농성장 안의 폭력들을 마주해야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백남기 농성장 내 청소년 흡연사건’ 또한 그중 하나다.
사건의 전말은 대략 이렇다.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고 그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장례식장 앞 백남기농성장에 갔던 청소년녹색당 당원들이 농성장 내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폈고, 그것을 본 몇몇 비청소년들이 담배를 피고 있는 청소년 당원들에게 폭언을 하고 시비를 걸었다. 이런 일은 그 청소년들이 담배를 필 때마다 반복되었고, 심지어 어느 날엔 한 비청소년이 이를 이유로 경찰을 막기 위해 마련된 농성장에 경찰을 불렀다. 하지만 현행 법 상 청소년의 흡연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어 경찰은 돌아갔다. 이 일 이후 흡연을 했던 당사자 두 분이 녹색당 페이스북 그룹에 이 일에 대한 글을 올렸고, 이에 대해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등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이에 백남기대책위 측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나이/성별/성적지향/질병여부 등에 관계없이 상호 존중하자는 취지의 대자보를 붙였다. 하지만 그런 대자보가 붙은지 이틀 후, 또 다시 사건이 생겼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농성장 내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그 청소년들에게 어떤 비청소년 남성이 담배를 끄라며 고함을 지르고, 위협을 가했다. 농성장에서 큰 소리가 나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결국엔 백남기대책위 측에서 이 일을 중재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모두 지켜본 나는 녹색당 페이스북 그룹에 그 비청소년의 고함소리가 담긴 녹음파일과 함께 글을 올렸다. 그 게시물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반응했고, 청소년 흡연이나 청소년 인권에 관한 논쟁이 일었다.
‘유해’한 건 담배일까, 훈계일까?
녹음파일 속 그는 담배를 끄라면서 자꾸만 연달아 “청소년 보호법 제 4조!”를 외친다. 이 법을 근거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시키고 싶었던 듯하다.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쏘아 죽인 후 그의 시신까지 탈취하려고 하는 누군가도 그랬다. 집시법을 근거로 민중총궐기에 ‘불법시위’ 프레임을 씌워 국민의 권리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하고, 시위를 과잉 진압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시키고 싶어 했다.
청소년 보호법 제 4조 2항. “청소년이 유해한 매체물 또는 유해한 약물 등을 이용하고 있거나 청소년폭력·학대 등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를 제지하고 선도할 것” 어쩌면 청소년이 담배를 피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 후 그들을 ‘선도(善導)’하기 위해 경찰을 부르고, 고함을 지른 그들의 행위는 그의 말처럼 청소년 보호법을 근거로 한다면 ‘합법’행위 일지 모른다. 비청소년 중심사회에서 청소년이 담배를 피거나, 섹스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건 ‘선(善)’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정말 이게 청소년 ‘보호’법을 근거로 합법 행위가 될 수 있다면, 그들이 말하는 ‘보호’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당시 현장에 있던 나는, 청소년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는 그 비청소년 남성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었다. 청소년이 담배를 핀다는 이유로,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낯선 이의 고함소리를 감당해내야 하는 건 ‘보호’가 아니라 폭력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폭력적인 이유는 단지 그가 고함을 지르고 위협을 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만약 그가 고함을 지르지 않았더라도 담배를 피우는 대상이 단순히 청소년이기 때문에 담배피지 말 것을 강요했다면, 그것 또한 폭력이다. 어째서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비청소년과는 다르게 청소년이 담배를 피는 건 문제라고 생각되고, 늘 ‘선도(善導)’의 대상이 되는 걸까? 청소년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선(善)’이라면, 비청소년 또한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선(善)’과 ‘악(惡)’은 ‘유해한 약물’인 담배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담배를 피는 대상인 청소년에게 집중된 듯하다. 담배가 유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담배를 ‘감히’ 청소년이 펴서.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청소년기는 아직 성장이 덜 된 상태고, 그래서 그런 시기에 담배를 피는 건 건강에 나빠” 사실, 신체적인 성장의 시기는 사람마다 달라서 ‘성장기=청소년기’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게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담배가 특히 건강에 나쁠 수 있는 사람은 청소년뿐만이 아니다. 어떤 질병에 걸린 사람이나 노인 등에게도 건강에 특히 나쁠 수 있다. 그리고 담배는 꼭 이 사람들이 아니어도 누구의 몸에나 다 나쁘다. 그럼에도 유독 청소년에게만 쉽게 “담배 피지 말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건 단순히 건강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청소년들은 아직 미성숙해서 어른들이랑은 다르게 담배를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 나는 담배를 끊지 못해 폐암에 걸렸다는 어느 비청소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 주변엔 알콜중독자인 비청소년도 있다. 심지어 이 비청소년은 술을 마신 후 주변사람들에게 폭력도 휘두른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는 말은 특히 청소년의 어떤 행동들을 규제하고자 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미성숙’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 무언가를 판별할 기준이 되기에 부적절하며, 어떤 사람의 ‘미성숙함’이 그의 행동을 함부로 규제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나보다 열등한 존재, 약한 존재로 대상화하여 그를 함부로 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폭력이다. 시위대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그랬고, 흑인을 대하는 백인의 태도가 그랬고, 여성을 대하는 남성의 태도가 그랬다.
어쩌면 사람들이 담배 피는 청소년을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그것이 ‘순종적인 청소년’이 아님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바람직한 청소년’은 어른의 말을 잘 듣고, 학업에 열중하며, 학업 외의 다른 것들엔 신경 쓰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 청소년이 어른들의 말을 어기고 일탈의 상징이라 여겨지는 담배를 물고 있으니 보기 싫을 만도 하다. 아마 시위대를 보는 정부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난 국민들이 얼마나 보기 싫었으면 행진을 하기도 전에 차벽을 세우고, 물대포까지 동원했겠나. 하지만 차벽을 친다고 해서 시위대가 사라지지 않듯, 청소년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강요한다고 해서 담배 피는 청소년이 사라지지 않는다.
진심으로 청소년이 건강하기 바란다면, 담배 피는 청소년에게 함부로 시비 걸 시간에 청소년을 죽음으로 내모는 입시경쟁, 열악한 노동환경, 그 외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는 인식 아래 행해지는 수많은 폭력들에 함께 맞서길 바란다. 청소년을 정말 숨 막히게 만드는 건, 담배가 아니라 그런 폭력들이다.
-태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