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25. 20:05ㆍ칼럼-청소년의 눈으로
청소년은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으로 대우받고 존중받고 있는가?
마을에서 어린이·청소년의 위치는?
마을, 마을 만들기, 혹은 마을 사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아이들’이 자주 거론된다. 아니, 어쩌면 지나치게 많이 거론된다. 아이들, 곧 어린이·청소년(편의상 이하 ‘청소년’)은 때로는 마을의 구심점으로, 때로는 마을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으로도 등장한다. 하지만 과연 청소년이 마을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조금 더 냉정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먼저, 청소년에 관한 사업은 마을의 매개체 위치에 자리하곤 한다. 공동육아나 교육 등의 이슈가 마을 주민들을 연결시키고 관계를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청소년들은 종종 마을 사업에서 봉사를 하고 참여한다. 벽화를 그리기도 하고 행사에서 일손이 되기도 한다. 전자가 주로 조금 더 나이가 적은 이들의 위치라면, 후자는 주로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이들의 위치이다.
이러한 마을 사업은 물론 청소년에게도 유익하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안정적인 환경을 누릴 수 있고, 자기표현과 활동의 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는 것은 섣부르다.공동육아 사업 등에서 청소년은 사업의 대상이 된다. 이때 ‘주민’의 범주에는 청소년이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종류의 사업에서 근간이 되는 것은 부모(보호자·친권자)의 수요와 네트워크이며, 청소년은 보호자에게 딸려 있는 존재이자 수혜자로만 생각된다. 또 한편, 청소년이 마을 사업에 봉사하거나 참여하는 경우는 일회적인 역할만을 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심하게 안 좋은 경우에는 이들의 활동은 마을을 ‘장식’하는 요소가 되거나 저비용으로 쓸 수 있는 인력으로 대우받는다.
이러한 한계들은 결국 한 마디로 요약된다. 청소년은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으로 대우받고 존중받고 있는가? 청소년에 관한 마을 사업들은 상당수가 보육이나 교육에 초점을 맞춘다. 마을에 살고 있는, 다양한 욕구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어린이·청소년의 삶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그 아래에는 청소년에 대한 편견이나 권력관계가 있기도 하다. 다음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청소년에 대해 편견을 갖고 그들을 주민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나 정책이 부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주민자치센터 공무원이 커피 마시러 왔는데 왜 여기서 카페를 하세요? 이러는 겁니다. 불량 청소년, 외국인들이 모이니까 우리 때문에 동네가 그렇게 변해간다고 보는 거예요. 원래도 같은 마을 안에 살고 있었는데 우리 때문에 모이는 거고 숨어 있던 사람이 보이는 건데 말이지요. 그런 걸 마치 우리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동네에 출몰하는 것처럼 인식하고 그래서 불쾌하게 느낀다는 거죠. …… 솔직히 우리 동네는 청소년이 놀 데가 없어요. 그래서 동네에서 애들이 생각보다는 술을 먹긴 해도 동네에서 잘 놀진 않아요. 그러니까 동네 애들이 술 먹고 다른 동네 가서 사고를 쳐요. 놀 데가 없으니까. 놀이터 말고는 다른 곳에서는 못 있어요. 차리라 원룸촌 많은 옆 동네를 가죠.”
- 권단 외(2014),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 마을 만들기 사업에 던지는 질문》, 207쪽
청소년운동에서 지역 조직을 만드는 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던 운동 내부 간담회에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왔던 적이 있다. 청소년들이 마을의 공터나 골목길에 모여 있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할 때 비청소년(어른)들에게 위협받지 않도록 하는 활동 같은 것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이런 아이디어는 역으로 보면 마을이 청소년들에게 그리 우호적인 공간이 아닐 수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는 마을이 집을 가진 사람이나 어느 정도 안정적인 재산이나 소득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공간이 되지는 않는지 우려하곤 한다. 이러한 우려는 비청소년과 청소년의 관계에도 적용된다.청소년들은 대개 마을에서 자신이 주인이 되는 정주할 공간을 가지지 못한다. “학생들이 마을을 모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마을에서 살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학생들은 공적인 공간이 없고 마을이랄 것도 없다.”(정용주(2016), 〈마을교육공동체를 위한 조건〉, 《오늘의 교육》 33호)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청소년들이든,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어린이·청소년들이든 비슷한 실정이다. 게다가 비청소년들이 규정한 정상성과 틀을 벗어나는 이들은 마을의 주민이 되기가 더욱 어렵게 되고 만다.
주민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
선거권 제한 연령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언론에서도 곧잘 나오곤 하는 말이 청소년들에게 적어도 교육감 선거권은 보장해야 하지 않느냐는 소리다. 청소년들이 교육의 당사자인데 전혀 참여할 수 없는 것은 이상하다는 논지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청소년들이(학교) 교육의 당사자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 청소년들은 시민이자 주민이기도 하다.
“청소년은 학교의 구성원이기도 하지만 또한 지역의 주민이기도 하다. 자신이 사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사람의 정체성과 삶의 질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모두가 관심 두는 거주지 문제에 청소년이라고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사는 곳에 관한 결정에 의견을 낼 수 없고, 주민을 위한 공동체에 청소년이 동등한 자격으로 포함되지 않는 현실에서 청소년은 주민이지만 주민이 아니다.”
- 치이즈(2016), “지역에 청소년이 산다”,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제12호
따라서 청소년이 마을에서 주민으로 살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정치적 권리의 보장이다. 여기서 정치적 권리라는 것은 선거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마을의 각종 의사 결정 과정에 원한다면 참여하고 의견을 존중받으며 함께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종 마을 사업에서 과연 청소년이 이러한 권리나 기회, 위상을 보장받고 있는지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마을에서 청소년에게는 공간이 필요하다. 마을의 본질은 결국 공간과 관계이다. 많은 마을 사업들이 커뮤니티 카페 등의 공간을 중시하는 이유이다. 비청소년과 함께하는 공간이든, 청소년들만을 위한 공간이든, 청소년들이 안정적으로 이용하고 관계를 맺으며 생활하고 자신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정치적 권리와 공간 양쪽 모두 단지 제도적·물리적 차원에 머무르는 이야기여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하여 두려움 없이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비청소년 주민들과의 관계나 마을 공동체 안의 문화도 청소년을 존중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가정에서 친권자에게 언어적·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청소년이, 친권자와 같은 공간에서 평등한 주민으로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까? 청소년들의 문화를 무시하고 간섭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 머물며 놀고 싶을까? 청소년이 주민으로 대우받는다는 것은 청소년 인권에 대한 감수성, 기존의 사회적 권력관계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청소년을 주민으로 대한다는 것은 그들이 마을에서 청소년이 아니게 된 이후에도 주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거 문제와 소득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미 오랜 시간 성숙한 마을공동체들은 마을에서 생활한 청소년들이 나이를 먹은 이후에도 마을 안에서 일자리나 생계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꼭 마을 안에서 마을 기업이나 일자리를 만들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주 등 다양한 삶의 조건이 마을을 통해 더 나아지고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속성이 없다면 마을은 청소년들이 나이를 먹으면 떠나고 마는 일시적인 공간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청소년을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주민으로 보는 것과 청소년의 이후 삶을 함께 생각하는 것은 서로 맞물리는 관계에 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거나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등의 말에 감동하는 것보다도, 이와 같이 지금 마을에서 청소년은 어떤 위치에 있으며 앞으로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 마을에게도 청소년에게도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공현
*이 글은 10월 10일에서 15일까지 진행되는 2016 서울 마을 주간 행사 중 '마을을 그리는 작은 컨퍼런스' 토론 발제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