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스페미니즘] 나를 사랑해서라고 말하지 마

2016. 7. 15. 18:46틴스페미니즘

난 토론회장에서는 내가 섹스를 한다 말할 수 있었지만, 

집에서는 애인과 손 잡는 것도 비밀이다.



[틴스페미니즘]은 여성청소년이 여성이자 청소년으로서 겪는 

복합차별을 다루는 페미니즘 에세이 릴레이 연재입니다. 


[ 함께 보면 좋아요즘 : 페미니즘in걸 - 인권오름 ]




  지난 6월 27일, 시의회에서 ‘학생인권 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제목은 번지르르하지만 내용은 사실 성소수자와 청소년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꽉꽉 차 있었다. 토론회에 대해 더 궁금하시다면 이 기사 ( http://yosm.asunaro.or.kr/155 )나 광주드림의 다른 기사를 보시라. 이번에 중심을 두고 하려는 이야기는 토론회 자체보다는, 토론회에서 만날 수 있었던 왜곡된 ‘사랑’에 대한 것이다.

 

첫번째, 사랑으로 불리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의 사랑

 

  이 토론회를 ‘성소수자 혐오’에 초점을 맞춰 비판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 이 토론회에서 가장 날선 화살이 향한 대상은 청소년성소수자와, 섹스를 하는 여성청소년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사랑으로 불리지 못했다. 청소년성소수자는 ‘일반 학생들을 추행하고 에이즈를 옮기는’ 악의 축이나 ‘정체성을 혼동하고 방황하는 순진한 아이’로 이분되었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학생을 비난하는 이유는 실상 ‘미성년자 여자애’가 섹스를 했다는 것에 있다. 섹스를 하는/한 여성청소년은 ‘성윤리가 붕괴된’ 비행자이거나 역시 ‘방황하는 순진한 아이’로 나뉘어 판단되었다. 성소수자, 여성일 뿐 아니라 청소년이기 때문에 더욱 혐오와 폄훼의 대상이 된 것이다.


두번째, 사랑으로 둔갑한 혐오

 

  보도된 영상에서 편집 되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나는 ‘청소년도 성욕있고 섹스한다. 자기 성정체성을 안다’고 발언했다. 스무 살 넘었냐 따위의 비난은 차라리 예상했다. 한편으로 그처럼 뜨뜻한 손길이 쏟아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내 등과 어깨를 두들기며 ‘이쁘다’, ‘말도 잘한다’는 칭찬, ‘아직 너는 모르겠지만 크면 다 안다’는 오만스러운 조언, ‘사랑해서 그런다’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나를 지나치는 것이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귀애를 만면에 드러내는 그들 앞에서 나는 동공지진을 겪다 ‘그런 사랑 필요 없는데’라고 중얼거리며 도망쳤다.

 

  내 단호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무 살을 넘기지 않은 어린 여자애인 나를 ‘방황하는 순진한 어린 양’으로 보았음이 틀림없다. ‘성인’, 즉 비청소년과는 다른 청소년의 특성과 유형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 놓고 그 틀 안에서 나를 판단한 것이리라. 다가와서 어깨를 두드린 사람들은 내용과 무관하게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모습 따위가 자신의 바람직한 청소년 상에 부합했던 것이리라. 또 그들 생각에 청소년이란 토닥이고 귀여워하면 감사해 할망정 불쾌해 하지는 않는 존재이겠지.



 

청소년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눈치를 살펴 ‘개념청소년’ 코스프레를 하며 생존을 이어간다. 



당신의 사랑을 되돌아보기를

 

  이러한 제멋대로의 ‘사랑’은 사실 그 토론회장에서 볼 수 있었던 특이한 광경은 아니다. 청소년들은 삶에서 가장 가까운 집단에서부터 공기처럼 그런 괴로운 사랑을 겪고 있다. 부모, 교사, 청소년 시설 종사자 등이 이런 오류를 흔히 저지르곤 한다. 그래서 나는 청소년과 관계 맺은 이들의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도 나를 좋아 한다’는 말에 일단 불신을 품는 편이다. 그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그 청소년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대등하게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랑한다는 말인지 아니면 선호하는/용납할 수 있는 청소년의 유형에 청소년들을 맞춰 온 것인지 알 수 없다.

 

  용납할 수 있는 청소년의 유형을 그리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어떤 청소년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관계를 맺을 때 자신의 선호나 가치관에 맞지 않으면 거리를 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청소년에게는 미성숙의 논리 하에 그 틀이 훨씬 좁으며, 많은 비청소년들이 그 틀 안에 청소년을 맞출 권리 혹은 책임이 있다고 믿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대개 자녀, 학생, 복지대상자인 청소년들에게 주도권을 행사함으로써 그 권리 혹은 책임의 이행이 이루어진다.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결정하는 동등한 상대로 여기지 않을뿐더러, 손쉽게 통제할 수 있도록 판이 철저히 기울어져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눈치를 살펴 ‘개념청소년’ 코스프레를 하며 생존을 이어간다. 그렇게 해서 ‘청소년성소수자’, ‘섹스를 하는 여성청소년’ 혹은 '술담배를 하는 청소년', '성노동을 하는 청소년', '탈가정청소년', 등등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자질을 지닌 청소년은 자기를 숨기고 부정함으로써 일상에서 자취를 감춘다. 혹은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보호망에서 밀려나고,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난 토론회장에서는 내가 섹스를 한다 말할 수 있었지만, 집에서는 애인과 손 잡는 것도 비밀이다. 내가 임신을 하거나 데이트폭력을 당했을 때, 부모는 내가 도움을 청할 사람 리스트에서 가깝기로 1순위이지만 삭제할 1순위이기도 하다. 당장 그들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기 위해, 어떤 위험한 순간에는 그들에게 의지할 수 없다.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연기하는 어떤 정숙한 딸이기 때문이다. 당신과 주변 청소년들의 관계는 어떤가. 당신이 사랑한다는 말로 그를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기를 바란다.



밀루 (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광주지부)


* 광주드림<인연>코너에 먼저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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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mi2016.08.28 19:33

    '내 아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라는 말은 언제나 상처지요. 나는 내 부모의 아이 이기 전에 내 자신이니까요.
    나를 사랑하니, 나보다 경험이 많으니, 내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듣는 수많은 말들은 너무나 어리석기 그지 없습니다.
    그냥 나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오만하고 방자한, '조언'을 가장한 '명령'을 하는 것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