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스페미니즘] 안전한 성을 누릴 권리

2016. 6. 28. 18:02틴스페미니즘

산부인과에 간다는 게 부끄러웠고 이상하게 쳐다볼 시선들이 두려웠다.

왜냐하면 A는 섹스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었고, 산부인과에 가면 그것을 이야기해야 하니까.  


[틴스페미니즘]은 여성청소년이 여성이자 청소년으로서 겪는 

복합차별을 다루는 페미니즘 에세이 릴레이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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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이야기


나랑 친한 친구인 A는, 이제 막 청소년기를 벗어난 비청소년이다. 꽤나 파란만장하고 괴로웠던 청소년기를 보냈던 A는, 이제야 겨우 조금 숨돌리고(?) 살아가고 있다.


2년 전 A는 첫 연애나 마찬가지인 연애를 시작했다. 그것은 A의 삶에서 큰 하나의 사건이었다. 데이트, 키스, 애무, 섹스 등 거의 모든 것이 처음인 연애에서 A는 불같으면서도 미숙했고 거칠었다. A가 원하는 것들과 원하지 않는 것들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 채 분위기에 이끌려서 스킨쉽을 했다. 처음이었던 스킨쉽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A는 자신의 몸이 파트너에게 드러나는 것을 수치스러워했고 자신의 의사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다.


섹스를 시작하게 되니 피임을 해야 했다. 피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A는 어떤 피임법이 있는지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약국에 가서 피임약을 사서 먹기로 했다. 쭈뼛쭈볏 약국에 가서 '생리 미루는 약'을 달라고 했다. 생리를 미루려는 목적이 아니었는데도, 혹시 자신이 ‘섹스를 하는 청소년’이라는 것을 들킬세라 겁났다.


설명서에 읽어보고 매일 저녁 8시에 알람을 맞춰 꼬박꼬박 하루 1알씩 먹기 시작했다. 먹은지 2주쯤 되었을 때 부정출혈이 시작됐다. 뭔가 문제가 생긴걸까. 피임효과가 있는 건지 불안했고 A는 종일 휴대폰을 붙잡고 지식인에 검색을 했다. 지식인에서는 산부인과에 가보라고 하는데, 가볼까 생각은 해봤지만 산부인과에 간다는 게 부끄러웠고 이상하게 쳐다볼 시선들이 두려웠다. 왜냐하면 A는 섹스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었고, 산부인과에 가면 그것을 이야기해야 하니까.  


다시 쭈뼛쭈볏 집 앞의 약국에 가서 약통을 들이밀며 "이 약을 처음 먹고 있는데 부정출혈이 생겼다"라고 이야기했다. 여성호르몬 수치가 높아서 그런거라고, 수치가 낮다는 다른 약을 주었다. 약사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A는 약국을 나오며 저 중년 남성인 약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에 꽤나 민망했다.


알약이 접시에 담긴 물음표와 포크, 나이프 모양으로 늘어져있다.

'지식인에 검색했다...생각난 즉시 두 알을 먹으래서 급히 물을 찾아 두 알을 꿀꺽 삼켰다.'


새 피임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부정출혈 증상은 괜찮아졌지만 일정 때문에 이틀정도를 약을 빼먹고 못 먹은 날이 생겼다. 약을 이틀이나 안먹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또 지식인에 검색했다. 생각난 즉시 두 알을 먹으래서, 급히 물을 찾아 두 알을 꿀꺽 삼켰다. 몸에 괜찮은 걸까- 임신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너무 심했고, 고민 끝에 청소년 성상담센터에 전화에서 문의를 했다. 임신 가능성은 확답할 수 없고 일단 다음 생리까지 기다리라는 답변.


몇 주가 지났는데 다음 생리는 시작하지 않았고- 젖꼭지가 아파왔다. 느낌이 쎄-한게 이상해서, A는 임신테스트기를 써보았는데, 한 번은 임신이 아니라고 하고 다른 한번은 임신이란다. 너무 불안했고, 결국에 파트너랑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아기집이 보이지 않아서 피검사를 해봐야 확실하다고 했다. 검사를 했고- 며칠 뒤에 온 문자.


"임신을 축하합니다. 병원에 내원해주세요."


아 - 분명 축하면 좋은 일이어야 하는데, 왜 그 때부터 모든 고통이 시작된걸까.

아이를 낳자니 너무나 막막한 일이었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도 죄책감과 스스로에 대한 낙인으로 얼룩덜룩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결국 A는 임신중절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피검사를 했던 병원에 다시 가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A가 미성년자이라서 임신중절수술을 하려면 보호자 동의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수술을 받아야하는 상황이었지만 A는 엄마아빠에게 도저히 “나 임신했다. 수술하게 동의서 좀 써달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서울까지 가서 병원 몇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거절을 당했다.


결국, 가장 가까운 비청소년 친구에게 사정을 털어놓고 명의를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법적인 ‘성인’으로 둔갑하고 나니 수술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A는 무사히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 나니- 배가 아프고 속이 매쓱거려 쓰레기통에 토를 하는 와중에도 온갖 감정들이 몰려왔다. 그 중 커다란 하나는 “드디어 끝났구나.”였다. 아이를 낳을 수 없었기에 자신을 속이고 몸을 아프게 하는 수술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그 수술이 드디어 ‘끝났다’.


사실, A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다. 담담하게 전해보고 싶기도 했고, 오랜시간 스스로 낙인찍어온 내 자신을 드러내기가 망설여져서- 친구 이야기인 척을 했다. 눈치를 챘을 수도 있지만 속았다면, 속아준 당신, 속여서 미안하다!



안전하지 못한 성을 이야기하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나는 중학교 때 등교를 거부하고 탈학교를 했다. 탈학교 전까지 거의 8-9년을 다녔던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노잼’과 ‘공포’였다. 진짜 알고 싶은 건 알려주지 않았던 학교에서는 아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며 엄청나게 많은 정자가 꼬물꼬물 기어가서 해처럼 커다란 난자를 만나는 동영상을 보여주었고, ‘건전한 이성교제’를 해야한다며 늦은 밤에 밀폐된 공간에서 둘이 있지 마라, 위험하다, 같은 ‘노잼’인 것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여성인 학생들만 따로 시청각실에 모아두고 낙태하는 동영상이라며 8-9개월쯤 되는 아기를 중절 수술하는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정규고등학교를 졸업한 주변 친구들에게 어떤 성교육을 받았냐고 물어보면, 많은 친구들이 ‘(성교육시간에) 자서 모르겠다’고 한다. 입시로 빡빡한 고등학교 스케쥴에서 어쩌면 성교육시간은 부족한 수면시간을 채우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교육부의 황당한 '성교육지침'이라는 내용의 뉴스 화면. '데이트 성폭력은 여자가 데이트 비용을 안내서 생긴다?', '이성친구와 단둘이 있게 하지 않는다', '친구들기리 여행가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성추행당하면 실수인 척 발등을 밟는다.' '성폭력은 이성교제가 건전하지 못해서 생긴다?'

△ 언제봐도 황당한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 (SBS 뉴스)



그동안 우리는 ‘안전하지 못한’ 성을 이야기하는 사회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데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고, 성은 숨겨야하고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만 이야기한다. 제도권 밖에 있는 청소년들은 성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찾기 어렵다. 성에 관해 모르거나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온갖 정보들이 넘쳐나는 인터넷 뿐이다.



우리를 든든하게 지지해 줄 수 있는 성교육


제대로 된 성교육, 그리고 그것을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과 나의 욕망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 나 자신/파트너와의 성적 의사소통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스킨쉽의 과정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실질적인 피임법은 무엇인지, 그리고 불가피하게 임신을 겪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을지(물론 법적인 제도의 보완도 꼭 필요하겠지만)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성을 누리며 겪을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우리를 든든하게 지지해 줄 수 있는 성교육이다. 제도권 학생들뿐만 아니라, 탈학교 청소년, 홈스쿨링을 하는 청소년 등 모든 청소년에게 가까이, 원한다면 언제나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 또한 스스로 많은 편견들을 흡수하고 있었다는 사실들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스킨쉽은 분위기 따라서 하는 거고, 남자가 먼저 이야기하고 리드하는 것이란 생각을 최근까지도 했다. 여자가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부끄럽고 낯선 일이었고, 남자라면 여자가 요구를 했을 때 섹스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편견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낙태 경험이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스스로를 오랫동안 낙인찍기도 했다.


그런 편견들로 나를 옥죄고, 때로는 합리화하고, 누군가에게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다. 스스로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해본 뒤에야 편견들로 뒤덮여 있던 생각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지금의 나는 오히려 조금 더 편안해졌다고 느낀다.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 시간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토닥거림과, 앞으로 청소년들의 ‘안전한 성을 누릴 권리’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화이팅이다!



라일락

아둥바둥 나로서 잘 살아가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오랜만에 쓰는 이 글이 저에게 조금의 해방감을 가져다 주어 기뻐요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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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2016.06.26~2016.07.31

무엇을? 요즘것들 블로그에 게재될 글/그림/만화 등의 원고를 (분량과 형식 자유)

어디로? yosmpress@asunaro.or.kr 메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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