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5. 17:57ㆍYosm Special
△어린이 해방의 날 그림 : 밀루
“어린이에게도 경어(높임말)를 쓰고 사람답게 대해 달라!” 어느 되바라진 21세기 청소년의 주장이 아니다. 1922년 어린이날 행사에서 발표한 선언에 있던 내용이다. 1922년이면 지금으로부터 94년 전, 거의 100년 전의 이야기다. 요새도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 어린 사람에게, 특히 청소년에게는 어른이 초면부터 반말을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100년 전부터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지 말고 존중하라고 하고 있는데 바뀌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 밖에도 1920년대 어린이날에 어린이들(*그때는 '어린이'라는 말도 쓰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청소년'이란 말은 잘 쓰이지 않았고 아주 나이가 적은 사람도, 10대도, 다들 '소년'이나 '어린이'라고 불리곤 했다. 단체마다 '소년'이나 '어린이'의 나이 기준이 다른 경우도 많았다.)이 요구했던 것 중에는 “수면과 운동을 충분히 하게 해달라!”, “조용히 공부하고 즐겁게 놀 수 있게 하라!” 같은 내용도 있었다. 최근 청소년들이 ‘학습시간 줄이기’ 운동, 쉬고 놀고 잠 좀 자고 밥 좀 먹자고 주장하는 것이 떠오르는 이야기다.
‘처음으로 어린이에게도
사람의 권리를 주자고 떠드는 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일본제국(일제)의 식민지배에 맞서서 독립을 요구했다. 뜨거웠던 3.1운동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사회적 움직임들이 나타났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소년운동’이었다. 소년운동은 어린이‧청소년들을 조직하면서 활동한 사회운동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중에는 소년들이 나서서 행동하는 운동, 소년들을 대상으로 계몽과 교육을 하는 운동, 소년들이 스스로 모여서 만든 조직, 어른들이 청소년을 보호하고 교육하자고 만든 조직 등 다양한 형태가 있었다. 1920년대는 소년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서, 전국 각지에서 ‘소년회’, ‘독서회’, ‘어린이회’ 등이 생겨났다.
이런 단체들 중, 천도교(동학을 계승하여 만들어진 민족 종교)에서 만든 천도교소년회는 1922년 5월 1일, 창립 1주년을 맞이하여 어린이날 행사를 열어 기념식과 거리행진 등을 진행했다. 그리고 1923년에는 본격적으로 다른 소년운동단체들과 함께 공식 제1회 어린이날 행사를 열었다. 우리가 지금 기념하는 5월 5일 어린이날의 시작이었다.
이때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이 당하는 여러 부당한 차별과 폭력, 무시에 저항하는 날이었다. 동아일보는 1923년 어린이날 행사에 대해서 “압박에 짓눌려 말 한 마디, 소리 한 번 자유롭게 하지 못하던 어린이도 이제는 무거운 철사를 벗어날 때가 왔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어린이에게도 사람의 권리를 주는 동시에 사람의 대우를 하자고 떠드는 날이 돌아왔다.”라고 그 의의를 설명했다.
어린이날을 만든 운동가들은 장유유서(長幼有序, 나이가 많고 적은 사람 사이에는 서열이 있다는 유교의 사상)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어린이들을 윤리적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시키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소년운동 중 다수의 단체들은 어린이들이 바른 생활습관이나 민족의식을 가지도록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장려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1920년대 소년운동에는 이런 여러 가지 성격의 운동이 뒤섞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제의 탄압과 운동의 분열로 소년운동이 망하고 난 뒤, 광복 이후에야 다시 시작된 어린이날 기념 행사나 청소년 관련 활동에서는, 어린이의 권리와 해방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백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 뒤 어린이날의 역사를 살펴보면 씁쓸하고 서글픈 순간들이 더 많았다. 가령 1950년대에는 나라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열면서 ‘반공의식’을 갖게 하겠다며 북한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대통령이 연설을 하기도 했다.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세워놓고 길디 긴 연설을 하면서 어린이들이 지쳐 쓰러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과연 누구를 위한 어린이날이었는지, 참.
오늘날 어린이날의 풍경은 또 어떠한가.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을 하고 선물이나 주고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선물을 주고 쉬는 거야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과연 어린이들을 인간답게 대하라고 외치던 그 문제의식을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1923년 어린이날 행사가 처음으로 열렸을 때, 일제의 조선총독부는 ‘아동위안회’를 개최하여 복지시설 어린이들을 동원해서 동물원을 구경하고 선물을 나누어주는 행사를 했다. 그리고 ‘아동애호데이’를 정하여 ‘아동보호사업’을 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어린이날의 모습이란 차라리 일제가 했던 행사들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어린이날이 아니더라도 어린이‧청소년의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1960년대에는 일터에서 일하던 청소년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쳤다. 1980년대에는 중고등학생들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그러면서 보충수업 폐지, 두발규제 반대, 자주적인 학생회 활동 보장 등을 요구했다. 16세부터 선거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한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당시 운동을 했던 청소년들은 나이가 적다고 미성숙하고 보는 것은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이며, 중고등학생들도 사회 변혁의 주체라는 이야기를 했다.
어린이날을 선포하며 어린이에게도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한 것이 94년 전이다. 그리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자신들을 인간답게 대하라고 요구한 청소년들이 역사의 무대에 있었다. 청소년을 향한 차별과 폭력을 없애고 권리를 보장하라고 하는 것은 요즘의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신세대’ 청소년들이라서, 청소년을 기성 사회에 불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이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느끼는 오래된 불만이다. 앞으로는 어린이날이면, 청소년들의 권리와 권리를 위한 행동에 대해서도 함께 떠올려보면 어떨까.
- 공현
투명가방끈, 아수나로 서울 활동가
청소년을 위해 뭘 해주겠다는 것보다, 청소년을 평등한 사람으로 대하고 존중하는 게 더 필요한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