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5. 13:11ㆍ칼럼-청소년의 눈으로
청소년의 눈으로
:: 학교, 수시가 중요해, 내 목숨이 중요해?
MERS(메르스, 중동호흡기증후군)가 한국에 퍼지고 있고, 돌아가신 분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들은 휴교를 하지 않고, 휴교를 하지 않는 이상 학교는 잘만 굴러간다. 다만 아래와 같은 몇몇 변화들이 생겨날 뿐이다.
형형색색 손 소독제와 흑색 가정통신문
전염병 비슷한 무언가 말이 들려오면 가장 먼저 배치되는 것은, 주로 급식소 앞에 놓이게 되는 형형색색 손 소독제 분무기들이다. 하지만 볼 때마다 정성 들여 손에 뿌리는 것도 잠시, 곧 손 소독제도 칠판지우개와 동급으로, 학교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그렇듯이, 시시해진다. 그리고 위 클래스나 컴퓨터실에 뽀얗게 먼지 쌓인 컴퓨터들 마냥, 학생들은 손 소독제 또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야자 때 졸고 있는 학생들 등을 아무리 소리쳐 깨워봤자 ‘이런다고 등급이 오르나’ 생각하듯이, 천하무적 손 소독제를 강조해봤자 ‘이런다고 메르스에 안 걸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문제는 소독제만 놓으면 할 일을 다했다는 듯이 알아서 하라고 방치하는 학교의 태도이다.
눈에 띄는 알록달록한 분무기들과 다르게 아무도 읽지 않는 흑색 가정통신문에 적힌 ‘메르스 예방 수칙’은 열이 나면 보건실에 가서 체온을 측정하고, 외출 후에 꼭 손을 씻으라는 등 보건실 문 앞에 붙어있는 기본 위생 포스터와 별 다를 게 없다. 심지어 체온을 측정하기 위한 체온계가 부족한 학교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은 걸까? 메르스 예방을 위해 낙타유를 마시지 말라거나 과도한 컴퓨터,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가정통신문을 보면 차라리 아무도 가정통신문을 신경 쓰지 않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이다.
이상한 협박 “메르스 걸리면 다 수시 못 쓴다”
메르스가 실시간 검색어에 종일 오르내리던 어느 날 담임교사는 종례시간에 말했다. "몸 관리도 자기 실력이야. 누구 한 명 메르스 걸리면 휴교해야 되는데, 그럼 다 기말고사 못 보고 그럼 다 수시 못 쓴다". 결국 ‘메르스에 걸리면 다른 학생들한테 민폐 끼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는 이상한 논리로 학생들을 몰아갔다. 우리는 ‘이렇게 위험한 병이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걱정의 말 대신에 성적과 수시를 걱정하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고3은 아파도 안 된다는 말은 학생의 건강에 대해 학교의 책임을 싹 무시하는 말이고, 메르스의 위험에 처한 전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어느 나이대의 사람들도 들어보지 못하는 특수한 협박일 것이다. 전염병 사태도 고려하지 않는, 너무나 경직된 입시제도의 문제도 느껴진다.
이렇듯 학생의 건강이 성적보다 소홀히 여겨지는 학교의 문화는 이미 있으나마나한 비중의 보건 교육과 약품‧비품 부족에 시달리는 열악한 보건실 상황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감기나 두통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어떤 태도를 보여주었나. 아픈 학생들에게 약이나 휴식을 제공하기는커녕 꾸역꾸역 책상에 앉혀 조퇴도 쉽게 허용하지않았다. 병에 걸린 사람을 비난하는 것도 이상한 모습이지만, 학교는 더더욱 메르스에 걸린 학생에게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 개인의 부주의라고 비난하기에 학교는 너무나 "한 것이 없다".
좁은 교실에 30~40명이 몰려서 하루에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하는 학생들. 어쩌면 전염병에 가장 취약하게 작용할 수 있는 환경이다. 교사가 메르스에 감염된 상태로 며칠 수업을 했다는 사례가 밝혀지자 난리가 났던 경우도 있다. 이런 환경을 먼저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 이전에 이런 열악한 환경을 무시, 방치하지 말고 건강을 위한 대책을 세워놔야 하지 않을까?
몇 년 전의 신종플루나 지금의 메르스와 같이, 훗날 더 심각한 전염병이 돈다고 해도 학교의 무관심과 무능력함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는청소년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국가 기관의 첫 번째 역할마저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치이즈 (고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