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3. 18:11ㆍ소식
2019 대학입시거부선언, ‘투명한 가방끈이 당당한 세상을 바란다!’
2019년 11월 14일(목) 1시 30분,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2019대학입시거부선언 <투명한 가방끈이 당당한 세상을 바란다!>(이하 거부선언)가 열렸다.
2011년부터 9년째 대학입시거부선언을 진행해온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이하 투명가방끈)은 올해 역시 ‘투명한 가방끈이 당당한 세상을 바란다’ 라는 슬로건으로 총 6명의 선언자들과 함께 거부선언을 진행했다. 19세 수능 시험에 응시하는 학생 당사자들의 선언으로 구성되었던 이전의 거부선언과 달리, 올해에는 다양한 나이대의 청소년-청년들의 거부선언으로 진행되었다.
개인 사정으로 당일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긁적(19, 학생 청소년, 청소년인권활동가)의 선언 영상이 아름드리홀 한쪽 벽을 메우며 첫 선언의 막이 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활동 현장을 돌아다니며 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청소년활동가들과 연대해왔다는 긁적은 “활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수록, 도대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불러오는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어려운 사람들과 연대하지 못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지식과 학문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저 혼자만 잘먹고 잘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곳이 바로 대학이었다”라며 많은 이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에 대학 입시가 존재함을 꼬집었다. 이어 그는 “스스로 배울 권리, 함께 성장할 권리를 원한다,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길을 제시하는 교육을 거부한다”고 이야기하며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했다.
인문계고를 재학 중인 해별(18, 일반계고를 재학 중인 학생 청소년)은 학교에서 겪은 성적이 낮은 학생과 높은 학생에 대한 차별 사례를 언급하며, “대학 가는 사람과, 안가는 사람, 좋은 대학 가는 사람, 안 좋은 대학 가는 사람을 분리하고 차별하는 게 고등학교의 목적인가” 라고 물었다. 그리고 그는 “누구든지 대학을 안가도 불안하지 않는 삶, 입시란 명분으로 학생, 입시생들을 벼랑으로 밀어붙이고 괴롭게 하지 않는 삶을 원한다”라고 말하며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했다.
탈학교 청소년인 눈재(17, 탈학교 청소년)는 “시험이 끝난 날, 시험 결과를 확인할 때 우는 학생들이 많다. 그건 그 학생들이 성숙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게 곧 자신의 가치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학생들의 가치가 성적과 등급으로 매겨지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또한 그는 “성적과 등급은 학생들의 자존감과 직결되어있다”라고 꼬집으며 지금의 등급 매기는 교육이 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임을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이 경쟁 구조에 조금의 균열을 내고자, 또 사람 눈재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쓸모에 두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입시거부선언을 한다”고 밝히며 “평가당하는 삶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긁적과 마찬가지로 개인 사정으로 당일 행사를 불참한 영민(대학을 중퇴한 20대)의 선언이 이어서 대독되었다. 선언의 앞부분에 영민은 스스로를 “1년 전까지만 해도 열렬히 대학에 가고 싶어 하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대학을 가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있다고, 대학을 간 사람과 안 간 사람의 차이가 크다고,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과 그저 그런 대학을 나온 사람은 다르다는 말을 믿었다”고 이야기하며 대학이 심은 환상으로 모든 것을 견뎌왔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잘 살기 위해 대학을 갔지만 대학은 여전히 경쟁하기를, 견디기를 강요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계속해서 유예되고 버텨야만 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자신의 삶을 되찾고자 대학을 나왔다고 이야기하며, “지금 여기서 나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영민은 “견디는 삶, 이제는 멈추겠습니다” 라는 결심을 남기고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했다.
왹비(20대)는 “작년까지 사수를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수능날 만점을 받는 게 나에겐 성공의 징표이자, 생존의 방식이었지만, 4번의 시험 동안 한 번도 만점을 받지 못했다”며 자신을 둘러싼 가난과 폭력이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곧 그는 “나의 환상과는 점점 멀어지는 현실을 보면서, 대학입시에서 '성공'을 한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에 가깝단 걸 알게 되어서 포기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애초에 좋은 대학을 가야만 빈곤이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단 게 이상하다”고 지적하며, “대학을 거부해도 좀 살만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했다.
현수(20대, 비인가 대안학교 졸업)는 “어려서부터 공교육의 방식이 폭력적으로 다가왔기에 대안적 교육을 찾아왔다”고 말하며 운을 뗐다. 하지만 그는 대안 학교서조차 검정고시와 입시에 매달리는 친구들을 보며 학력이 결정짓는 삶에 대한 이상함을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고졸 이하의 학력자가 살아가기엔 너무나도 힘들고 무서운 것이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최종학력 때문에 어떤 직장에서도 자신을 채용하려하지 않았던 경험을 토로하며 “이러다 굶어 죽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력으로 승리자와 낙오자가 분명한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며 “나를 위해, 그리고 입시로 고통받는 모두를 위해 대학입시를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 피아 도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