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게 해줘

2019.10.21 14:23극한직업청소년

학교 가게 해줘






학교 가고 싶다

나를 포함하여, 내 주변 청소년 트랜스젠더 친구 중, 학교를 자퇴하지 않은 친구를 찾기 힘들다. 죄다 학교에서 말도 안 되는 폭력과 멸시, 소외를 경험했고 그럼에도 아등바등 학교생활을 버티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학교생활을 버티기 위해 스스로 감정을 지우고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자 노력했다고도 한다. 남들은 싫다고 하지만,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 급식 먹는 것, 심지어 교복을 입고 시험으로 인한 압박마저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내 친구들은 죄다 자퇴했다.

그래놓고 매번 모여서 학교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눌 때, 한다는 소리는 '학교 가고 싶다'라는 것이다. 나를 공부와 생활에 있어 다그치던 선생님들도,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아이들도, 심지어는 내가 학교생활에서 가장 괴로웠던 체육 시간마저 모두 그립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그것들과 학생이란 이름으로 만날 수 없어 후회스럽다. 이 모순적인 장면은 결국 자퇴에 대한 책임과 부채감을 청소년 트랜스젠더 자신만이 짊어지도록 만든다. 아무리 탓하고 싶어도 누구에게도 따질 수 없으니 말이다.

 

어쩌겠어

그러나 어쩌겠는가. 어차피 자퇴한 것이고 무엇보다 더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는 머리에 '힘'을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덕에 이제는 '학교 자퇴한 것 정말 괜찮은 선택이었다', '어차피 있어봐야 미치기만 했을 텐데 학교 밖이 더 공부 잘된다'라는 생각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자퇴 말고도 고민하고 괴로워해야 할 것은 차고 넘쳤다. 예컨대 트랜스젠더로서 겪는 성별 불쾌감과 HRT, SRS(호르몬 치료, 성별적합수술)에 대한 고민과 괴로움은 자퇴로 인한 괴로움을 덮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게 더 시급하고 간절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퇴하지 않는다면 HRT, SRS를 일찍 하기 어렵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등하교 시간에 버스를 타면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일 때마다, SNS상에서 청소년들이 시험 얘기를 하는 것을 볼 때면 움츠러들곤 한다. 나름 스스로 정당화를 하여 학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봉합했다고 해도, 그래도 스멀스멀 자괴감이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복잡다단하고 애매모호한 상태와 감정을 언제쯤 뿌리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평생 따라다닐 것 같다.

 

이제는 책임 전가 좀 하고 싶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남 탓하지 말고 너의 선택이니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것을 머리로는 알아도, 막상 누구에게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기도, 그래서 어떻게 책임을 요구할지도 갑갑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트랜스젠더로서 살아가고, 살아남는데 필요한 노력은 늘 트랜스젠더 스스로에게만 과잉 전가하도록 만든다.

따지고 보면 가당치도 않다. 어른들은 청소년을 보호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안전한' 가정에서 '훈육'하는 것,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은 의무라고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한다. 특히나 이번 정부는 '공정'하게 사회적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떠들지 않던가.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소수자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고, 가정에서 폭력과 불화를 겪고, 그로 인해 일찍부터 불안정 노동으로 내몰리는 것이, 그래서 매일매일을 정신질환과 자해, 자살 충동에 시달려야 하는 장면들은 앞서 말한 어른들, 사회와의 말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트랜스젠더의 불안정한 삶은 학교와 교육 문제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 불안정한 삶의 책임은, 오롯이 트랜스젠더 개인에게만 전가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것은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개인만이 책임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살아보니 그렇다. 이제는 뻔뻔하게 보일지라도 남 탓을 할 때이다.

비단 트랜스젠더가 아니더라도 탈학교 청소년이 겪는 여러 위기는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수자, 정상에서 벗어난 이들을 포용하지 못하도록 설계된 교육과 학교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안 불평등과 인권의 문제는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닌 탈학교 청소년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이들 삶의 낙인과 위기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것은 내가 학교 밖 청소년으로서 잘 살 권리만이 아닌, 평등한 학교를 요구하는 것 또한 무진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요구하고 싶다. "니들 탓이야! 학교 가게 해줘!"


- 김가명

10대 트랜스젠더, 학교 밖 청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