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학교엔 질문이, 내 대답엔 짐작이 따라온다

2019. 10. 21. 12:59극한직업청소년

탈학교엔 질문이, 내 대답엔 짐작이 따라온다




탈학교를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왜 했느냐고 묻는다. 대답은 항상 다르다. 재미없어서요. 대인관계가 질려서요. 공부가 스트레스여서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학교에 친구가 없어서, 공부를 못 해서,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어서 하는 식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내가 화장을 진하게 하면 학교에서 잘렸다고, 안경을 쓰고 트레이닝복을 입으면 학교에 적응 못 했다고 생각한다.


따라붙는 꼬리표가 싫어서 최대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설명하지만, 무엇보다 자퇴엔 엄청난 이유가 따라붙을 거라는 생각이 제일 싫다. 사실 자퇴는 내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아니어서 이유가 기억도 안 난다.


그래서 요즘은 거꾸로 되묻는다. ‘당신은 왜 학교에 다니나요(다녔나요)?’ 반응은 보통 두 가지다. 몇몇은 그제야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나머지는 왜 묻느냐며 기분 나빠한다. 자퇴에 대한 질문은 당연하지만, 학교에 다니는 이유를 묻는 것은 기괴하게 느껴지는 이 느낌이 지긋지긋하다. 학교는 청소년에게 불가결해서, 청소년 인생의 기준이 된다.


-고등학교 2학년이야?

-아니요, 학교에 다니지 않아요.

-학교 다녔으면 2학년인 거지?


학생과 비교당할 때마다 ‘정상의 기준점’에서 벗어난 낙오자가 된 것 같다. (심지어 나는 18살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18살은 진작에 삶을 이과, 문과, 예체능 중에서 선택했어야 하는데 나만 방황 중인가? 학생은 꿈이 없어도 한심하게 보지 않지만, 내가 꿈이 없으면 왜 대책 없이 자퇴한 비행청소년이 될까?


쉽게 다니다 금방 그만둔 기타학원처럼 학교도 선택지로 남아있어야 한다. 자퇴에 대한 질문을 의심스럽게 하지 마라. 해버렸다면 대답을 그대로 믿어달라. 질문보다 상상을 덧붙여 자퇴 사유를 짐작하는 게 더 싫으니까.


- 양말. 18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