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9. 21:21ㆍ리뷰 ver.청소년
김지현의 벌새 리뷰
-<벌새> 스틸컷
※ 이 글은 영화 <벌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얼마 없는 여성 청소년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보았지만 벌새를 보고 난 기분은 정말 익숙하고 새로웠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울던 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울고 난 여운만 남을 뿐 눈물은 남지 않았던 적이 많은데 하지만 벌새는 달랐다. 보는 도중 내내 시도 때도 없이 내 마음을 후벼 판 장면들의 연속으로 눈물은 계속 새어 나왔고 엔딩 크레딧을 볼 때는 소리 내 울고 싶었다. 끝나고 나서도 울음을 참을 수 없어 화장실에 가서 엉엉 울었던 그 날, 그 영화의 기억이 생생하다.
집으로 오던 그 날의 발걸음을 무겁고 가볍기도 했는데 쏟아져 나오는 질문들과 감정 그리고 나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새어 나왔던 것은 은희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보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은희가 집 호수를 헷갈려 다른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며 불안 섞인 화를 내뱉는 첫 장면에서 학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리고 종일반을 하고 밤늦게 유치원 차에서 내리는 나를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는 그 길의 어둠을 보면서 혹시 내가 너무나 싫어서 가족 모두 나를 두고 이사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에 휩싸여 울며 집으로 달려갔던 나를 떠올렸다. 그때도 지금도 나를 보호해줄 사람이 있긴 한 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벌새의 모든 상황이 너무나 내 이야기 같아서 마음이 복잡했다.
은희와 지숙의 대화에서, 방에서 은희가 대훈에게 맞는 장면에서, 잠자리에 누워 자기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수희의 말에서, 성수대교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우는 은희를 보면서 나는 자살해서 죄책감에 둘러싸인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나를, 오빠에게 반말했다고 혼이 나고 맞던 나를, 여전히 잘하는 게 없어 불안해하는 나를,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던 세월호 사건을 보며 목놓아 울었던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콜라텍 연습을 하는 은희 아빠의 모습에서, 은희가 아무리 불러도 은희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에서 나는 놀러 나갈 준비를 하며 옷을 찾는 아빠와 일을 끝내고 들어와 저녁을 차려주고 부엌 구석에서 창문을 바라보던 엄마를 발견했다. 영화 속 은희를 보며 나를 찾았을 땐 나는 울고 있었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소녀들의 꺄르르 웃음은 현실과 다르다. 현실에선 웃음은 커녕 받는 상처와 아픔으로 가득하고 웃음은 잠시뿐 다시 불안과 걱정이 들이닥치는 하루들로 가득하다. 설렌다는 표현보단 냉정하고 잔인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세계다.
벌새를 보고 나서 다시 수면으로 올라온 질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을 찾는 여행을 떠나 상처와 아픔을 받았기에 성장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걸까? 상처를 안 받았어도 지금의 내가 있을까? 상처를 안 받았다면 지금의 나는 절대 없겠지만 상처를 받지 않는 나 나름대로 건강한 사람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전에는 상처를 외면하고 싶었고 이 상처가 있는 내가 너무 싫었고 지금도 가끔 아니 자주 그런 마음들이 내 주위를 미세먼지처럼 가득 에워싸기도 한다. 어째서 내가 이런 상처를 받아야 했으며 우린 왜 이럴 수밖에 없었을까. 아직까지도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터져 나오며 영지 선생님의 말처럼 알 것 같아도 알 수 없는 괴로운 새벽들이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상처를, 그때의 아픔으로 인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흉터를 외면하기보다는 그런 상처가 어째서 흉터로 남게 되었는지 그런 상처를 받게 만들었던 상황들에 대해 그 사람들과 얘기하며 싸우고 싶다. 은희와 지숙의 대화처럼 그 사람들은 미안해하기는 할까 싶지만 나와 모두를 위해 꼭 해야 될 일이라 생각한다.
벌새를 보고 나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이런 내가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슬픈 일이지만 정말 큰 위로로 다가왔다. 벌새는 나의 이야기였고 또한 우리의 이야기였다. 은희는 나였고 또한 우리였다. 다 같이 모여 밥을 먹으면서도 텅 빈 느낌이 들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수많은 은희들은 그렇게 외롭고 또 사랑을 갈구했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자란 나는 아직도 외롭고 아직도 사랑을 갈구한다. 수많은 은희들이 자신을 믿어주고 보호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삶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싫어지고 이상하고 예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도 그런 은희들이 사랑과 안식을 찾아 거리를 헤매며 돌아다니고 그 상처를 지니며 삶을 버텨내는 것이 정말 슬프지만 그들은 혼자가 아니고 앞으로도 아닐 것이다. 내가 벌새를 보며 나의 상처와 마주하고 위로받은 것처럼 수많은 은희들은 삶 속에서 은희였던 수많은 영지를 만날 거라 생각한다. 나 또한 방황하는 은희에게 우롱차를 건네줄 수 있는 영지 선생님이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받은 위로가 너무 커 이런 부족한 글이라도 써서 벌새에 대한 마음을 전하고 싶게 만들어 주신 김보라 감독님께 감사드리고 감독님의 말씀처럼 스스로 이상한 아름다움을 더 사랑하며 살려고 노력하려 한다.
-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