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장의 성장일기

2019.10.07 21:37리뷰 ver.청소년

농성장의 성장일기


-그림: 지혜



2019년 5월 14일, 나 농성장은 경남도의회 맞은편에 세워졌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세워진 목적인 ‘경남학생인권조례’가 내일과 모레 중 교육상임위원회에서 검토된다고 한다. 학생에게 동등한 권리를 외치는 피켓이 내게 써 붙여졌다. 학생인권조례는 도의회의 교육상임위원회에서 검토된 후에 과반수 찬성이 이루어지면 본회의로 넘어가는데, 본회의에서도 통과되면 조례가 제정된다. 특히, 그 도의회의 과반수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근처에 농성장이 나만 있는 게 아니다. 주변에 3개 정도가 있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은 걸 보니 왠지 저 농성장들과는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다.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농성장인가 보다.


5월 15일 오후, 멀리서 온 사람들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사람들은 내 앞에 매트를 깔고 눕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했다. 오늘이 바로 나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하는 날이다. 만약에 오늘 조례가 통과되면 나는 사라지는 걸까? 통과되지 못하면 언제까지 이 자리를 지켜야 할까? 해가 질 무렵, 내 안에서 쉬던 사람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아주 먼 곳에서 환호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 세상에, 경남학생인권조례가 상임위원회에서 부결됐다고 한다. 도의회에서 까만 승용차 몇 대가 빠져나오자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차를 향해 연신 꾸벅이고 트럭으로 신나는 노래를 틀려고 한다. 나와 함께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이 멍한 표정으로 도의회를 바라보고 있다. 울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실감이 안 나는 건지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오늘 정말 늦은 밤 회의를 진행했다. 슬픔을 잊기 위해서인지 어떤 이유인지 새벽까지 사람들은 내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며칠 동안 몇몇 사람들이 내 안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도 잠을 자기도 하고 다 같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조용하면서도 북적북적한 나날이다.


5월 24일 아침, 이상하게 오늘은 아침부터 사람이 많다. 먼 곳에서 와 처음 보는 사람도 있고 경찰 옷을 입은 사람도 많다. 오늘 아주 큰 일이 벌어질 듯해 다른 쪽을 봤더니, 헉! 반대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왔다. 오늘이 도의회 5월 회기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 조례가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되지 못했지만 도의장[각주:1]이 직권상정[각주:2]을 하거나 도의원 1/3인 20명이 발의[각주:3]를 하면 조례가 바로 본회의에서 논의될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도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같은 더불어민주당인 도의원들도 이를 지지한다고 밝힌 모양이다. 양옆으로 피켓을 들고 구호도 외치고 노래도 틀고 오랜만에 떠들썩한 하루다. 저러다가 싸우는 거 아닐까? 한구석에서 울고 있는 저 사람 앞에 이제는 눈물 흘릴 날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 오늘도 결국 도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6월, 7월… 언제까지 난 여기에 서 있는 걸까?


6월이 되었고, 맨날 오던 사람들은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날씨도 점점 더워지는데, 여기서 살 생각인 걸까?


6월 12일 아침, 사람들이 도의회를 찾아왔다. 오늘은 6월 도의회 회기라고 한다. 오늘로써 결국 난 사라지는 걸까? 앗, 또 제정이 안 되면 난 또다시 7월까지 여기에 있는 걸까? 오늘도 사람들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이야기한다. ‘학생 인권 짓밟은 민주당은 사죄하라’고 적힌 피켓 하나. 더불어민주당이 조례 제정을 포기한 것이 실감 난다. 정말로 이제 방법이 없을까? 매일 내 안에서 자리를 지키고, 피켓이나 현수막 같은 걸 들고 도의회 앞에서 서 있고, 기자회견 하고…. 이 사람들은 어떻게 매일 여기에 올까?


6월 29일 새벽, 비바람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이틀 전에도 바람에 무너졌지만 사람들이 날 세워줬었는데, 오늘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으악! 허리가 끊어진 것 같다. 아직 조례가 제정되지 못했는데…. 나는 여기서 사라지지만 경남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으면 좋겠다. 꼭.


- 귀홍 기자

  1. 도의장: 지방자치단체의 의회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사무를 통괄하는 역할을 한다. [본문으로]
  2. 직권상정: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의장)이 직권으로 안건을 본회의에 바로 올려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본문으로]
  3. 발의: 국회에서 안건을 제출하는 일 [본문으로]